사무엘 시편

착각

물음표와 느낌표 2019. 5. 20. 22:25
착각/윤삼열 

그렇게 알았습니다
구부러진 것보다 반듯한 게 좋은 줄
흔들리는 것보다 곧게 서야 되는 줄
두루뭉술하기보다 분명해야 똑똑한 줄
꼿꼿하게 서서 인사하는 게 자랑인 줄
글씨도 정자로 써야만 멋있는 줄

그래서 
골목길이 아닌 쭉 뻗은 대로를 택하고
접근성좋고 편리한 네모 반듯한 아파트에 살고
고상한척 도도하게 모가지 곧추세우고
휘청거리지 않으려 아파도 참고 
그냥 넘어가면 될 것을 일일이 따져묻고

그런데
엄마 뱃속에서 구부리고 있었더라구요
잠잘 때도 옆으로 구부려 자고요
손도 구부려야 음식을 먹고요
발도 구부려야 앞으로 가고요
허리도 구부려야 힘을 쓰더라구요

그래서일까요
불빛 찬란한 대로보다 골목길이 좋아졌구요
논두렁 밭두렁 구브렁 오솔길이 그립구요
똑부러진 말보다 어눌한 말에 정이 가구요
삐툴삐툴 손편지가 정겹구요
풍파에 허리 굽은 소나무에 눈길 가구요
 
이제 알았습니다
곧을수록 쉬 부러지는 것을 
흔들리는 것에 왜 눈길이 가는지
나이들면 꼬브랑 고개가 되는 이유를
인생길이 꼬브랑 길인 것을
구부러지는 게 자연스러운 것을
왜 좁은문으로 가야하는지
아니 이제 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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