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면 무뎌집니다
(요한계시록2:1-5) 익숙하면 무뎌집니다 350장
미국의 어느 마을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마을에 사는 어느 부자가 매일 아침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1달러씩을 나눠주었습니다. 뜻밖의 호의에 사람들은 몹시 감격했습니다. 고마움과 감격으로, 돈을 준 부자를 만나면 정말 반갑게 극진히 인사도 했습니다. 한 두어 달 동안 그렇게 꾸준히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던 부자가 어느 날부터 돈 나누어주는 일을 멈췄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퍽 의아해 했습니다. 두어 주가 지난 다음, 부자는 다시 예전과 똑같이 아침 일찍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돈을 나누어주었습니다. 돈을 다시 받기 시작한 사람들은 그럭저럭 감사한 마음으로 돈을 받았지만 맨 처음 돈을 거저 받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심드렁한 자세였습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난 다음 그 부자는 무슨 생각에서인지 돈 나눠주는 일을 완전히 멈췄습니다. 부자가 돈은 주지 않자 화가 난 몇몇 사람들이 그 부자에게 "왜 내 돈을 주지 않느냐?"며 야무지게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우리들의 마음과 생활이 늘 이렇습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뜻밖의 사랑과 은혜를 베풀어 줄 때, 처음에는 몹시 감격스러워하고 정말 감사하다가도, 그 은혜와 사랑이 꾸준히 주어지면 어느 순간부터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되지 않는 호의 때문에 짜증이 나고 역정이 납니다. 놀랍게도 감사의 조건들에 익숙해지면서 도리어 감사의 조건이 불평과 원망의 조건으로 바뀌어 결국은 스스로를 파멸시키고 맙니다.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러했고, 에베소 교회가 그러했으며, 오늘날 우리들도 그렇습니다. 처음 정명 동산에서의 감격과 기쁨과 각오는 온데 간데 없이 날마다 되풀이되는 생활 속에서 그저 평범한 월급쟁이로 전락해버린 것은 아닌지... 그리고 그것도 부족해 편안함과 안락함에 묻혀 죄악 속에 있는지도 모릅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지금은 모르지만 예전 시골에서는 심심풀이 겸 토끼를 잡으러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산에 있는 토끼를 뜀박질로 따라잡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은 토끼가 가진 습성 때문이라고 합니다. 토끼를 잡기 위해 우선 토끼 발자국이 찍힌 곳을 찾아 올무를 놓습니다. 그리고 토끼를 뒤쫓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토끼는 늘 자기가 다니는 길로만 다니기 때문에 결국은 올무가 놓인 길목을 다시 지나가게 되고, 그러다가 올무에 걸려드는 것입니다. 자기 발자국이 찍힌, 늘 다니던 길로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토끼는 바로 그런 생각 때문에 올무에 걸려들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익숙한 것들은 편하고 안전할지 몰라도 위험하기도 합니다. 습관처럼 늘 행하는 일과 어느새 마음속에 굳어진 생각들이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잘 느끼지를 못합니다. 익숙하다 보면 무뎌집니다. 익숙해진 자신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느낀다 하더라도 이미 익숙해진 것이 편하게 생각되어 그것이 옳은 일인지 그릇된 일인지를 제대로 분간하기가 힘들어집니다. 또한 익숙해지면 편안할지 몰라도 새로운 삶을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생활이 새로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편하게 생각하고 있는, 온갖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마크 트웨인은 '익숙하면 경멸을 낳는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익숙함은 우리 모두에게 달콤한 유혹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주님은 처음사랑을 회복하라고 권면합니다. 출애굽의 신앙이 보여주듯 신앙은 익숙함이 아니라 모험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노숙자나 실직자가 아니라, 익숙해져서 감사를 모르고, 감격을 모르고, 나아가 죄가 죄인지 모르고 사는 사람일지 모릅니다. 익숙한 것들과 결별해야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일부러 떠나는 훈련, 거절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치 거친 파도가 유능한 선장을 만들어 내듯이 그러한 훈련과 모험 속에 우리는 더 성숙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6년 11월 27일 교직원예배:윤삼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