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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가을, 음악 그리고 詩
물음표와 느낌표
2006. 9. 20. 16:52
가을, 음악 그리고 詩가을은 나에게 원초적인 시간처럼 느껴진다. 가을은 어느 해 정해진 시간에 왔다가 그 시간이 지나면 가 버렸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거기에, 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마치 오래 기다려 주는 깊은 눈빛을 가진 연인처럼, 가을에 나는 먼 길을 돌아 집에 돌아온 것처럼 느낀다. 조금 쓸쓸한 집, 차갑고, 투명한 집, 나는 마치 겨울과 봄과 여름을 거쳐 오래 세상을 헤매다가 가을이라는 집에 돌아온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그 집에 들어서면 영혼은 후우, 한숨을 내쉬고, 사나운 세상살이로 먼지투성이가 되었던 육체는 잃어버린 예민함을 되찾는다. 가을에 나는 우주의 가벼운 부름에 파르르 떨며, 반응하는 떨림판이다. 내 안의 어떤 여자가 말한다. 다 알아, 너무나 잘 알아, 이백 년 전부터 알고 있었어.
당신이 세계의 강물에서 처음으로 솟아나온 손가락으로 내 어깨를 툭, 쳤다. 청동가루 냄새 세계의 모든 도서관에서 책장들 팔락이는 소리 그리곤 희고 희고 흰 바닷가 모래사장 위에 물새 날아간 발자국 두어 개 ---- 김 정 란, (가을)---
가을에 나는 나를 처음으로 만지는 연인 앞에 선 것처럼 예민해진다. 하늘 아래에 서본 것처럼, 스치는 바람에서 태고의 손길을 느낀다. 태초의 물을 뚫고 솟아나온 첫 변째 손가락, 난 당신을 살짝 만지기 위해서 이백 년 동안 걸어왔어요, 라고 말하는 바람, 그러면 우우, 코끝에 청동기의 냄새가 훅 스친다. 왜 아니겠는가, 내 감각은 가을에 짐승처럼 사나워진다. 그런데 짐승은 무엇보다 냄새를 잘 맡는 존재이므로 가을의 짐승인 나는 수천 년 전까지 코를 벌름대는 것이다. 나는 냄새를 잘 맡기 위해 나지막하게 웅크린다. 그러나, 내 감각은 늘, 다른 곳으로 재빨리 날아간다. 짐승의 자리에서 얼른 움직이는 것이다. 아주 빨리, 세계를 읽기 위해서, 다시 말하면 사람의 자리로, 삶을 이해하고 말하고 글쓰는 자의 자리로 이동하는 것이다. 내가 읽지 못한 세계의 모든 책들의 책장이 파르르 넘어간다. 그리고 한 번 더 이동, 바다로.
이번엔 강이 아니고 바다이다. 어떤 한 사람의 물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물, 우리를 만들어 낸 우주의 자궁,짠물, 모든 생명체의 물, 나는 그곳에서 인간을 끌고 인간 바깥의 자리로 날아오른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당신과 함께, 나 아닌 나, 내가 나보다 더 좋아하는 다른 나, 나를 살짝 만진 내 바깥의 나, 그래서 물새는 두 마리이다. 딩동, 새들은 함께 날아간다. 아마, 다음해 가을에 다시 돌아오겠지. 그렇게 가을 여행은 끝난다. 짐승의 자리에서 인간의 자리를 거쳐 영혼의 자리까지. 딩동.
그러니까 가을에 우리의 몸은 우주의 떨림판이며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은 음악이다. 음악은 아주 독특한 형식의 언어이다. 그것은 일종의 보편적 언어라고 할 수 있는데, 가을이 음악과 잘 어울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가을에 인간은 임박한 조락의 예감 앞에 마주서게 되는데, 그 조락의 예감이 삶의 진정한 얼굴을 우리 앞에서 살며시 드러내 보여준다. 삶은 휘황할 때보다도 조금 기울었을 때 그 진짜 모습을 보여 주므로, 삶의 바람은 인정하기 싫지만 죽음이다. 그 죽음의 엷은 예감이 우리를 보편적 정서 가까이로 데리고 간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죽는다. 그것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것, 그 태도 안에 인간을 진정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지혜의 비밀이 숨어 있다. 겨울이 와서, 모든 것을 죽여 버리기 전에 죽음을 예비하기, 나의 한계와 못남을 수납하며 삶을 거두고 정리하며 죽음을 준비하기, 가을은 죽음의 예감으로 엷게 문대진 겸손한 삶의 얼굴이다. 음악은 그 예감과 조용히, 아주 조용히 싸운다.
음악은 결국 죽음과 싸우는 형식이다. 음악은 멜로디로 아루어져 있다. 멜로디는 시간의 펑퍼짐한 흐름을 일정한 분절로 나누어서 반복한다. 음악이 가진 반복의 기능으로 인간은 죽음의 단선적 흐름에 저항한다. 어떤 음악가들은 명랑한 멜로디로 죽음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체하며 싸운다. 그러나 어떤 음악가들은 죽음을 본질적 요건 으로 받아들인 채 죽음에 저항한다. 그것을 슈베르트만큼 잘 해 냈던 음악가는 없다. (죽음과 소녀)는 마치 핏줄을 잡아당겨서 멜로디를 만들어 낸 음악처럼 들린다. 뻑뻑한, 쓰라린 아름다움. 슈베르트는 그 특별한 아름다움을 그려내는 데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예술가처럼 느껴진다. 그토록 순결하고, 그토록 천사적이면서도, 그토록 고통스러운 영혼의 소리를 이 음악가만큼 정확하게 이해했던 음악가는 없다.
어느 가을날, 그의 멜로디는 내 핏속 깊은 곳으로 막바로 쳐들어 들어온다. 피는 약간 검은 붉은 색이다. 그건 아주 빨갛지 않다. 그건 전적으로 명랑한 색채가 아닌 것이다. 그건 본질적으로 조금 우울한 색깔이다. 핏속에는 죽음이 스며들어 있다. 슈베르트의 음악은 그렇게 빨간색과 검은색 사이에서 흔들리는 우울한 피의 어떤 특성을 막바로 건드린다. 슈베르트를 듣다 보면, 피가 조금 더 검어진다. 그러나, 그 검음 뒤에서 천사도 조금 더 날갯짓이 빨라진다. '피묻은 날개'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인간의 언어 중에서 가장 천사적인 것은 음악이다. 그것은 영혼을 막바로 울린다. 그래서 그것은 시와 잘 어울린다. 음악에 실어 주면 시는 그것이 활자에 갇혀서 잃어 버렸던 말의 육체성을 회복한다. 음악이 시의 볼륨을 되살려 내는 것이다.
해는 조금씩 더 이울 것이다. 그리고 낙엽이 도시의 황량한 공간을 쓸쓸한 영혼처럼 스치고 지나가겠지. 당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작은 절규가 소리 없이 솟아오를 지도 모른다. 난 누구일까. 난 어디에 있는 걸까. 죽음이 가을의 나지막한 어깨를 타고 안개처럼 부드럽게 방안으로 스며들어온다. 엷게, 그럴 때 당신은 이미 시인이다. 당신의 마음은 발설되지 않은 무수한 언어로 가득 찬다. 당신은 가만히 웅크린다. '이 무수한 말들을 끄집어 내고 싶어,' 딩동. 시가 당신의 문을 두드린다.
작.은.바.구.니.... 2006. 9/20 잿빛하늘에, 음악도 가을같은 색으로...............
출처 : ♡ 사랑의 뜨락 ♡
글쓴이 : 작은바구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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