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편 네편
내편 네편 (시118:6~7) 419장
엄마와 아들의 대화 한 토막입니다.
그림책에 있는 사자를 보고 있는 아이에게 엄마가 물었습니다.
“얘, 만약 사자가 따라 오면 어떻게 할 거야?”
“총으로 쏘면 되요.”
“그런데 총알이 없으면?”
“자동차로 도망가요.”
“자동차가 고장 났으면?”
“나무 위로 올라가면 되요.”
“사자가 나무 위로 올라오면?”
아이가 울상이 되더니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도대체 엄마는 누구 편이에요? 왜 자꾸 사자 편만 드는 거예요?”
(황지우‘성 요한병원’중에서)
우리는 무의식중에 내편과 네편을 나누는 속성이 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신정숙 시인은 내편과 네편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제 사람을 만나면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하는 버룻이 생겼다/
아군이 없으면 고달프므로
적군이 없으면 재미없으므로/
삶이
어느 틈에 전쟁이 되었으므로 (신정숙‘적군과 아군’)
힘들고 어려울 때 특히 내편을 찾게 됩니다. 누군가 나를 위로해주고, 나를 이해해주고, 나를 감싸주고. 내편에 서서 변호해주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럴 때 일수록 사람들은 내게서 멀어져 가고, 오히려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편을 만들어 자신을 보호하고자 합니다. 때로는 선심을 사기 위해 선물을 하고, 좋은 친구를 만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다 영원한 내편이 되어줄 남자를 찾고 여자를 찾아 결혼도 합니다. 하지만 내편이 되어야 할 신랑은 남의 편 남편이 되어버리고, 옆에 있어 주어야 할 옆편네는(옆에 있네) 쌍스러운 여편네로 변질되고 맙니다. 남(의)편이 되어버린 남(내)편은 그래서 부담스럽고, 여편네가 되어버린 옆편네는 잔소리꾼으로 기피 대상이 되어버려 아무도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니 우울증에 시달리고 맘 편할 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행복한 가정, 행복한 사람은 누가 뭐래도 내편이 많은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힘들고 어렵고 슬프지 않은 사람 없고 또 마음 아플 때 나를 위로해주고, 내 옆에 있어줄 때 그보다 더 큰 힘이 되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함석헌 선생은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고 묻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친구가 많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친구들이 다 내편이라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런던 타임즈는 설문조사를 통해 가장 좋은 친구는 온 세상 사람이 다 나를 버릴 그때에 나를 찾아오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편은 마음으로부터 신뢰할 수 있고, 힘들 때 의지할 수 있고, 아무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고, 울고 싶을 때 함께 울어줄 수 있고, 서슴없이 전화 할 수 있는 친구라야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누가 내 속을 알아주고 헤아려줄까요? 과연 내편은 어디 있을까요?
어린왕자의 여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너의 장미꽃을 그토록 소중하게 만드는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소중하게 소비한 시간이란다.”그렇습니다. 내가 시간과 공들인 만큼 내 것이 되는 것입니다. 어쩌다 선물 한번 했다고, 이름 한번 부르고 기도하는 것으로 내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어림없는 일입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그의 책 [역사의 종언과 최후의 인간]에서 인류가 길고 긴 역사 속에서 추구하였던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첫째가 경제적으로 보다 더 잘 살겠다는 경제적 욕구요, 둘째는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라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지난 100년 동안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다툼에서 사회주의가 패배하게 된 이유를 사회주의 체제는 인정받고자 하는 인간의 기본 욕구를 무시하였기 때문이라 강조합니다.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로 사람들을 얼마나 진심으로 인정해 주었는지 자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은 그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에게만 진정으로 보답하고, 그 사람이 내편이 되는 것입니다.
연저지인(吮疽之仁) 이라는 고사성어가 있습니다. 종기의 고름을 빨아주어 깊은 감동을 준다는 뜻으로, 중국의 고서인 史記에 나온 말입니다. 그런데 이 말은 위(魏)나라 문후(文侯) 시대에 유명했던 오기(吳起) 장군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는 사령관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병사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의복이나 식사도 일반 사병과 똑같았으며, 군을 지휘할 때도 말을 타고 다니지 않은 장군으로 유명했습니다. 어느 날 오기가 군을 시찰하던 중, 종기로 고생하는 한 병사를 만났습니다. 오기는 그 병사와 종기의 상태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급기야 그를 치료하기 위해 그 종기를 입으로 빨아주었습니다. 이 소식이 그 병사의 어머니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들은 그 어머니는 아들을 치료해 준 오기에 대해 감사하기보다는 오히려 통곡하며 울었던 것입니다. 이를 이상하게 사람들은 '지체 높은 장군이 종기를 빨아 치료해줬다면 가문의 영광으로 여겨야 할 터인데 왜 통곡인가?'라며 의아해 했습니다. 그러자 그 병사의 어머니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지난번에도 오 장군이 내 남편의 종기를 빨아주더니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음을 당했소. 그런데 이번에는 내 아들의 종기를 빨아주었다고 하오. 지아비도 목숨을 걸고 오 장군을 위해 싸웠는데, 하물며 아들놈이야 오죽하겠소." 결국 오기가 위나라 최고의 장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을 위해 목숨을 내던지며 싸워주는 병사들의 마음을 얻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편이 있으면 분명 위로와 힘을 얻습니다. 그러나 내편은 내가 먼저 네편이 되어줄 때만 가능합니다. 오기 장군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상대의 아픔과 상처를 먼저 헤아리는 배려와 따뜻한 마음을 베풀어야 합니다. 내 말을 하기 전에‘네 생각은 어때?’이렇게 상대의 생각을 묻고 상대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시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더 좋은 의견뿐 아니라 내편을 한 사람 얻게 될 것입니다. 말을 독점하면 적이 많아집니다. 그런고로 적게 말하고 많이 들어야 하고, 또 들을수록 내편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가정의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언어가 다릅니다. 남자의 언어는 단순히 질문과 대답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언어는 '적이냐 아군이냐' 를 가르는 암호와 같습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나 머리 아파' 라고 말하면 남자는 '감기야? 약먹어. 약 사줄까?'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여자는 약은 먹지 않고 머리만 아프다고 계속 투덜거립니다. 결국 남자는 '머리 아프면 약을 먹어!'라고 소리를 지르고 둘은 싸움에 돌입합니다. 남자의 언어는 단순합니다. '머리가 아프다'라는 문제를 '약을 먹는다'로 해결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여자의 언어는 '머리가 아프다'라고 말하면'얼마나 아프니? 참 힘들지? 어떡하니?' 라며 같이 걱정해 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바로 '암호!' 라고 소리 질렀을 때 '00'라고 암호가 나와야 아군인 것을 아는 것처럼 여자의 언어는 상대가 내편인지 아닌지를 알아보는 수단과 같습니다. 서로에게 상대가 원하는 언어를 주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서로의 언어를 배우는 것, 그것이 아군을 만드는 길이고, 사랑입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옛날에 박상길이라는 나이 지긋한 백정이 장터에서 푸줏간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양반 두 사람이 고기를 사러 왔습니다. 첫 번째 양반이 “야! 상길아 고기 한 근 다오”라고 했습니다. 박상길은“예, 그러지오.” 대답하고는 고기를 떼어 주었습니다. 두번째 양반은 상대가 비록 천한 백정이지만 나이든 사람에게 말을 함부로 하기가 거북해서“박서방, 여기 고기 한 근 주시게”라고 점잖게 부탁했습니다. 박상길은 이 말에“예, 고맙습니다”하며 기분 좋게 대답하고 고기를 듬뿍 잘라 주었습니다. 그런데 먼저 고기를 산 양반이 보니, 같은 한 근인데도 자기가 받은 것보다는 다음에 산 양반의 고기가 갑절이나 더 많아 보였습니다. 그 양반이 화가 나서 소리를 지르며 따져 물었습니다.“야 이놈아! 같은 한 근인데 이 사람 것은 이렇게 많고, 내 것은 이렇게 적으냐?”그러자 박상길은 침착하게 대답합니다.“네, 그거야 손님 고기는 상길이가 자른 것이고, 이 어른 고기는 박서방이 자른 것이니까요.”아 다르고 어 다르다는 말은 바로 이런 것을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내편을 만드십시오.
내편을 만들고 싶습니까?
남편을 내편으로 여편네를 옆사람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창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돕는 배필은 남자의 갈비뼈입니다. 머리도 다리도 엉덩이도 아닌 몸의 소중한 부위를 감싸는 갈비로 만든 옆 사람이란 뜻입니다. 옆에서 함께 해주는 사람은 윗사람이나 아랫사람이 아니고, 뒷사람이나 앞사람도 아니고 한 평생 같이 살아가는 마음통하는 반려자, 함께 손잡고 걸어가는 옆 사람입니다. 교사와 교사,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그리고 우리와 주님이 서로 옆 사람 되어 네편이 되어줄 때 옆 사람은 내편이 되고 우리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명동산의 한 가족입니다. 우리는 한 소망 안에서 부름받은 친구 같은 가족이고, 가족 같은 동료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모두는 서로 내편이며 바로 우리 편입니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한 예수님이 친구가 되어 우리 편이 되어주십니다.(눅7:34, 히13:8) 그러기에 우리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내편이 되어 나를 도와주십니다.(시118:6-7) 이보다 더 큰 우군이 어디 있습니까? 그 누구도 우리를 대적할 자가 없으며(롬8:31)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롬8:39)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4년 5월 21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