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짖음의 사명
부르짖음의 사명(렘33:2-3) 363장
사순절 기간입니다. 기도, 절제, 묵상 등의 단어들로 그리스도를 삶 속에 깊이 새기며 내면을 성숙시켜가는 시간입니다. 베드로가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심히 통곡한 것처럼(눅22:62),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린 주님처럼(히5:7)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부르짖는 일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겐 부르짖음의 사명이 있습니다.
부르짖음이란 사전적 의미는“큰 기쁨이나 슬픔, 고통 따위의 격한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소리 높여 크게 떠들다”이지만 신앙적 의미는 그보다 더 훨씬 깊이 있는 신앙고백입니다. 성경에서는 세 부류의 부르짖음이 등장하는데 그 모든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귀에 타전되고 하나님의 응답을 촉발하는 부르짖음입니다. 첫째 부르짖음은 하나님의 공의가 훼절된 현실을 보고 하나님의 정의로운 팔을 기대하는 부르짖음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의 부르짖음이요, 아벨의 핏소리가 낸 부르짖음이요, 가난한 자들이 내지른 부르짖음이다. 사울에게 쫓겨 유대 광야를 전전할 때 다윗이 내지른 아우성, 그리고 브닌나에게 학대를 당할 때 한나가 내지른 부르짖음입니다. 둘째,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초래된 고난을 극복하기 위한 부르짖음입니다.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 대한 부르짖음으로, 사사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이요, 바벨론 포로들의 부르짖음입니다. 셋째, 자신의 죄와 상관없이 파손된 피조세계, 상처 입은 하나님의 질서, 그리고 의인의 고통을 인한 부르짖음입니다. 예레미야와 욥의 부르짖음이요, 베데스다 연못에 누워있는 식물인간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을 향하여 바친 부르짖음은 소리가 너무 커서 안 들리는 부르짖음입니다. 이렇듯 부르짖음은 가난하고 힘들고 고통스러워하며 탄식하는 자들의 울부짖음이며, 눈물과 탄식의 부르짖음과 아우성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성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의 부르짖음은 단순한 외침과 울부짖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호소이며 기도이며 반드시 해야만 하는 사명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부르짖은 사람의 대표적 인물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부르짖는 기도를 촉구하셨습니다. 어둡고 답답한 역사의 곤경을 부르짖는 기도로 돌파하고,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기도로 예레미야를 담금질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당하는 유다와 예루살렘을 향한 분노와 비탄의 기도가 바로 예레미야와 예레미야 애가의 핵심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악으로 물들어가는 이때에 우리도 부르짖어야만 합니다. 지금은 애가를 부를 때입니다. 왜냐구요? 그것만이 우리의 살길이며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애가란‘크게 소리 높여 운다’는 뜻으로 눈물과 함께 울부짖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물 흘리며 부르짖는 기도를 주님이 들으십니다. 눈물은 거꾸로 흐릅니다. 눈에서 흘러 하늘에 가 닿습니다. 그리하여 주님은 우리가 흘린 눈물을 위로와 감사의 병에 담아주십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눈물을 모두 병에 담아 두실 뿐 아니라 이 사실을 주님의 책에 다 수록하여 두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시56:8) 그러므로 사순절 기간 부르짖으십시오, 눈물의 사람이 되십시오. 그렇게 엎드려 부르짖을 때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업드립(Up Dream)시키시고 크고 은밀한 일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전설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께서 닭과 개와 돼지를 불러서 "너희는 이제부터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1년 동안 사람들을 위하여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아보고 봉사하다가 올라오너라."고 했습니다. 1년 후 닭과 개와 돼지는 신께 돌아왔습니다. 제일 먼저 닭이 입을 열어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 사람이 열심히 일하기는 하는데 시간을 몰라 애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새벽마다 '꼬끼오!'하며 새벽을 알려 주었습니다. 신께서는 너무나도 기쁘셔서 닭에게 벼슬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개가 와서 신께 보고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가보니 도적이 많아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조금만 이상한 사람이 보여도 '멍멍!'하며 힘껏 짖음으로 집을 지켜 주었습니다. 신께서는 잘했다고 칭찬하며 3개의 다리를 가진 개에게 다리 하나를 더 주었습니다. 다리 하나를 선물로 받은 개는 신으로부터 받은 네 번째 다리가 너무나도 귀하기 때문에 소변을 볼 때, 신으로부터 하사받은 다리에 더러운 것이 묻지 않도록 꼭 다리 하나를 들고 소변을 본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돼지가 와서 신께 보고했습니다. 제가 세상에 가보니 세상에 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먹고 자고 놀다가 왔습니다. 돼지의 말을 듣던 신은 화가 나서 "여봐라! 게 아무도 없느냐? 저 돼지의 코를 단칼에 치라." 그래서 코와 입이 하나로 붙었고 돼지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숨이 막혀 씩씩거리며 먹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자신의 사명을 알고 '꼬끼오!','멍멍!'외치고 부르짖은 닭과 개는 칭찬을 받았지만, 사명을 모른 돼지는 있는 것도 뻬앗기고 만 것이지요.
하나님 앞에 엎드리지 않는 자, 부르짖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을 확신하지 못한 자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알고 있다면 무릎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다면 무릎으로 눈물로 엎드려야합니다.
통곡의 부르짖음은 휘장을 가르듯 막힌 담을 헐어 버립니다.
간절한 부르짖음은 한계를 초월하고, 불가능을 가능케 하고, 어두움을 밝힙니다.
사순절은 부르짖음의 절정을 체험하는 기간입니다.
부르짖음으로 주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명을 확인 하는 기간입니다.
겸손함의 깊이는 부르짖음의 깊이입니다.
부르짖은 만큼 겸손하고,
부르짖은 만큼 낮아지고,
부르짖은 만큼 온전해 질 수 있습니다.
눈물과 탄식, 부르짖음과 아우성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께 드려진 성례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4년 4월 2일 교직원예배 윤삼열목사 설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