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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배운다

물음표와 느낌표 2009. 5. 11. 09:01

아이에게 배운다 (요6:5-11) 198장

 

  하버드 대학의 로버트 로젠탈 박사는 학생들과 쥐를 대상으로 한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학생들과 쥐를 세 그룹으로 나누어, 첫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네들은 행운아들이다. 자네들은 천재적인 쥐를 다루게 되었다. 이 쥐들은 지적으로 키워졌으며 지극히 총명하다. 두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보통 쥐라고 소개했습니다. 능력과 지각이 평범한 보통 쥐를 다루니까 크게 기대하지 말라고 합니다. 세 번째 그룹의 학생들에게는 멍텅구리 쥐라고 소개하며, 아주 지능이 낮아 먹을 것을 찾아도 그것은 우연에 불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똑같은 조건에서 6주 동안 훈련을 시킨 후 수숫대를 찾도록 시켰는데 천재 쥐들은 단시간 내에 수숫대를 찾아내었고, 평범한 쥐들은 수숫대를 찾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바보 쥐들은 수숫대를 찾는데 너무 어려워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천재 쥐도 바보 쥐도 보통 쥐도 없이 다 똑같은 쥐였지만 이런 판이한 결과가 나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실험에 참가한 학생들의 태도에 있었다고 합니다. 먼저 학생들이 천재 쥐, 보통 쥐, 바보 쥐라는 전제를 가지고 쥐를 대할 때 그런 태도로 대했기 때문에 결과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는데 어떤 태도로 접근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는 마치 계산을 하는데 필요한 전제와 같습니다. 1+1=2라는 전제로 덧셈을 하면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만 1+1=11이라는 전제로 덧셈을 하면 모든 답은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기본 전제가 잘못되었다면 그 뒤에 따르는 모든 결론 또한 잘못되듯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태도도 이와 유사합니다. 키스 해럴은 그의 책 [태도의 경쟁력]에서 "태도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바탕이자 도구로, 운명을 통제하고 직장생활이나 개인생활을 최고로 만들기 위한 핵심 요소"라면서 "능력은 바꿀 순 없지만 태도는 바꿀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렇습니다. 태도는 마음의 렌즈와 같습니다.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우리가 보는 것은 달라집니다.

 

 

  교육에는 6가지 내용이 있다고 합니다. 지식을 전달하는 지식교육, 기능을 습득시키는 기능교육, 태도를 익히는 태도교육, 문제 해결을 능숙하게 행하는 지혜 교육, 삶을 풍요롭게 하는 인격 교육, 삶의 궁극적 의미를 탐구하는 종교교육입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하지만 정신의학자 칼 메닝거는 '태도는 사실보다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만큼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5병2어의 기적입니다. 벳새다 광야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치료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남자만 5천명이니까 여자와 아이들까지 합하면 약 2만 명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식사시간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다가 오면 사람들은 대부분은 어떤 태도를 취하게 됩니까? 아니 제자들은 어떤 태도를 취했습니까? 본문에는 예수님의 의도가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요6:6)" 예수님은 문제를 당했을 때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보고 싶어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매우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대답을 합니다. 가까운 촌이나 마을에 가서 음식을 사 먹도록 하자고 합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 때 상식적 수준, 합리적 수준으로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이성을 선물로 주었기 때문에 그 선물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함정이 있습니다. 이 문제는 합리적 상식적 수준으로 풀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사먹을 돈도 없을 뿐 아니라, 돈이 있다고 해도 사먹을 곳이 없습니다. 합리적 생각 같지만 결국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자신들의 부담을 회피하기 위한 불신앙적 방법을 제안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계산 속에는 전능하신 주님이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오늘날도 빌립처럼 아주 실용적이며 실증적인 원리에 입각하여 예수님은 따르지만 늘 부정적인 태도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따지고 묻습니다. 유추해서 따져 봅니다. 원인과 결과의 원리에 따라 판단해 봅니다. 참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제외시키면 안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태도가 바뀝니다. 제자들에 비하면 미미한 아이,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 한 아이가 나옵니다. 그는 자신이 먹을 도시락을 내 놓았습니다. 자신 혼자 먹으면 끝나는 도시락입니다. 그러나 이 아이의 도시락이 굶주림의 문제를 푸는 대안이 되었습니다. 저는 오병이어를 드린 어린 아이의 부모의 가정교육이 부럽습니다. 기독교 명문 가정의 자녀교육이 어떠해야 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이 아이는 생각 없이 예수님을 따라 다닌 것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오랜 시간이 지나면 먹을 것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해낸 치밀한 아이입니다. 그래서 도시락을 준비했고, 예상대로 상황이 전개되었습니다. 남들은 먹지 못해서 괴로워할 때, 보란듯이 준비된 도시락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아이는 주변을 살필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아이는 자신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가져옵니다. 오병이어는 기적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아이의 태도와 배려하는 마음의 중요성도 보여줍니다.

 

  공부만 잘하는 것이 인재의 조건이 아닙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자녀로 키우는 것이 바른 교육입니다. 우리는 이 아이에게서 많은 것을 배웁니다.  사랑하는 선생님,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 앞에 있습니까? 이럴 때 어떤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의 태도입니까? 어린 아이의 태도입니까? 어린이날을 통해서 우리에게 맡겨진 자녀들을 사랑하고 섬겨야 하겠지만 그보다 아이들에게서 순수한 삶의 태도를 먼저 배우고, 나아가 우리가 아이들을 대할 때 얼마나 바르게 대하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9년 5월 4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