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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 한 마디 2

물음표와 느낌표 2008. 10. 27. 14:45

그 말 한마디 ② (야고보3:1-6) 424장

 

  다윗은 그들의 "이(齒牙)는 창과 화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 57:4)라고 노래하고, 야고보는 "혀는 곧 불"(약3:5)이라고 지적하듯 우리의 입술을 통해 나오는 말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합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을 가지고 먹고 사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저는 제 말 한 마디에 죽고 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으니 이보다 더 미련한 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의 미련함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그 말 한마디'란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은 그대들에게 원칙을 말하며 잘못을 지적해주는 이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얼마나 갖고 있습니까? 저 역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라고 말해왔으며 또 그것이 성경적일 때는 더욱 힘주어 당연하듯 말하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 맞는 말 때문에 오히려가슴앓이를 하며 마음의 상처주고 받음을 수없이 경험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옛 시조입니다. "말하기 좋다하고 남의 말을 말을 것이/ 남의 말 내 하면 남도 내 말 하는 것이/ 말로써 말 많으니 말 말을까 하노라." 옛말에 '가루는 칠수록 고와지고, 말은 할수록 거칠어진다' '좁은 입으로 말한 것 넓은 치맛자락으로도 못 막는다' '웃느라 한 말에 초상난다'는 등 말의 부정적인 면을 일러주는 속담이 있는 반면, '말이 고마우면 비지 사러 갔다 두부 사온다' '길 아니거든 가지 말고 말 아니거든 듣지 말라'는 등의 긍정적인 속담도 있습니다. 아무튼 옛 속담이나 시조를 보아도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 사는 곳에 말 때문에 생기는 문제가 많기는 마찬가지인가 봅니다. 어쨌든 '제 흉 열 가지 있는 사람이 남의 흉 한 가지를 말하거나'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흉본다'는 말처럼 '내눈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에 티를 말하는 것'이 될까 두렵습니다만 우리 모두 다시 한번 말의 소중함을 깨닫기를 간절히 소망할 따름입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여러분, 흥부가 왜 놀부집에 밥얻으러 갔다가 놀부아내에게 밥주걱으로 뺨 맞았는지 아십니까? 흥부가 형수한테 귀싸대기를 얻어맞았던 것은 자식들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그 수모를 스스로 감당했던 게 아닙니다. 형수에게 다가가 '혀형, 형수님, 저 흐-흥분데요' 하는 바람에 형수가 당황이 돼서 밥주걱으로 귀싸대기를 올렸다는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형수님, 저 흥붑니다' 해야 할 것을 잘못된 소통(疏通)으로 돌아온 것은 봉변밖에 없습니다. 물론 웃자고 한 이야기입니다만 같은 말도 듣기에 따라서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로 천냥빚도 갚는다는데, 저는 긁어 부스름을 만들때가 참 많습니다.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하노라고 온갖 노력을 다하다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로 인해 그 노력은 물거품이 되고, 그렇게 좋던 사이는 살얼음이 되어 버릴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때 마다 이놈의 주둥이 하고 쥐어 박지만 이미 엎지러진 물인것을 어떻게 합니까? 그러기에 모든 소통은 화자(話者) 중심이 아니라 청자(聽者)자 중심이어야 합니다. 
 

 
  뽕나무와 관련된 이야기 중에 '신상구'(愼桑龜)라는 말이 있습니다. 옛날 어느 바닷가 마을에 효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돌아가실 지경에 이르러, 온갖 용하다는 의원을 다 찾아다녔고, 좋은 약을 다 해 드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래 산 거북이를 고아 먹으면 병이 날 것이란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거북이를 찾아 나선 지 며칠만에 효자는 마침내 천 년은 되었음직한 커다란 거북이를 발견하였습니다. 거북이를 지게에 지고 집으로 오다 지친 아들이 뽕나무 그늘에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 때 거북이가 느긋하고 거만하게 입을 열었습니다. "여보게 젊은이, 이렇게 수고해도 소용없네. 나는 힘이 강하고 나이가 많은 영험한 거북이라네. 자네가 나를 솥에 넣고 백 년을 끓인다 하여도 나는 죽지 않는다네." 거북이의 말을 들은 뽕나무가 가당치 않다는 듯 입을 열었습니다. "이보게 거북이, 너무 큰소리 치지 말게. 자네가 아무리 신기한 거북이라도 나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고면 당장 죽고 말 걸세." 집으로 온 아들은 거북이를 가마솥에 넣고 고았습니다. 그러나 거북이는 아무리 고아도 죽지를 않았습니다. 그 때 효자는 집으로 올 때 뽕나무가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얼른 도끼를 들고 뽕나무를 잘라다  불을 때자 정말로 거북이는 이내 죽고 말았습니다. 거북이 곤 물을 먹은 아버지는 씻은 듯이 병이 나았답니다. 거북이가 제 힘을 자랑하지 않았다면 뽕나무의 참견을 받아 죽지 않았을 것이고, 마찬가지로 뽕나무도 괜한 자랑을 하지 않았다면 베임을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괜한 말을 하다 거북이도 죽고 뽕나무도 베임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한 소년이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가져오지 않아 담임선생님으로부터 꾸지람을 듣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소년은 침묵했고 교사는 "다음부터는 훔쳐서라도 준비물을 가져오너라."고 말했습니다. 17년 후, 이 소년은 지존파의 대부 김기환이라는 이름으로 법정에 섰습니다. 그의 최후 진술은 이러했습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의 말 한마디가 제 인생을 이렇게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 선생님 역시 양식은 목사와 다를지 모르지만 말로 먹고사는 사람입니다. 가르치다 보면 무수히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분노와 슬픔, 좌절, 아픔, 배신감으로 주체할 수 없거나 치를 떨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나?" 끓어오르는 분노와 미움으로 혈압이 오르고 얼굴은 붉어지고 손발이 부르르 떨리기도 합니다. 이럴 때 "그럴 수 있지" 이 한마디 즉, 한 글자만 바꿔 생각하면 격정의 파도는 잠잠해지고 마음은 이내 안정과 평안을 찾을 것입니다. "그럴 수 있나"와 "그럴 수 있지"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표현하기에 따라 180도 다른 인격으로 바뀌게 됩니다. 

 

  다음 예화는 우리 가르치는 사람이 어떠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한 이발사가 자신의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젊은 도제를 한 명 들였습니다. 젊은 도제는 3개월 동안 열심히 이발 기술을 익혔고 드디어 첫 번째 손님을 맞이했습니다. 그는 그 동안 배운 기술을 최대한 발휘하여 첫 번째 손님의 머리를 열심히 깎았습니다. 그러나 거울로 자신의 머리 모양을 확인한 손님은 투덜거리듯 "머리가 너무 길지 않나요?" 초보 이발사는 손님의 말에 아무런 답변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그를 가르쳤던 이발사가 웃으면서 말합니다. "머리가 너무 짧으면 경박해 보인답니다. 손님에게는 긴 머리가 아주 잘 어울리는 걸요." 그 말을 들은 손님은 금방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두 번째 손님이 왔습니다. 이발이 끝나고 거울을 본 손님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너무 짧게 자른 것 아닌가요?" 초보 이발사는 이번에도 역시 아무런 대꾸를 못합니다. 옆에 있던 이발사가 다시 거들며 "짧은 머리는 긴 머리보다 훨씬 경쾌하고 정직해 보인답니다." 이번에도 손님은 매우 흡족한 기분으로 돌아갔습니다. 세 번째 손님이 왔습니다. 이발이 끝나고 거울을 본 손님은 머리 모양은 무척 마음에 들어 했지만, 막상 돈을 낼 때는 불평을 늘어놓으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 것 같군." 초보 이발사는 여전히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이발사가 나섰습니다. "머리 모양은 사람의 인상을 좌우 한답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은 머리 다듬는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요." 그러자 세 번째 손님 역시 매우 밝은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네 번째 손님이 왔고 그는 이발 후에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참 솜씨가 좋으시네요. 겨우 20분 만에 말끔해졌어요." 이번에도 초보 이발사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멍하니 서 있기만 하자, 이발사는 손님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시간은 금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손님의 바쁜 시간을 단축했다니 저희 역시 매우 기쁘군요." 그날 저녁에 초보 이발사는 자신을 가르쳐준 이발사에게 오늘 일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이발사는 대답합니다. "세상의 모든 사물에는 양면성이 있다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고 얻는 것이 있으면 손해보는 것도 있지. 또한 세상에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네. 나는 손님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자네에게 격려와 질책을 하고자 한 것뿐이라네." (커쥔 '좋은 생각이 행복을 부른다' 중에서)

 

  

  우리의 한마디는 어떠합니까? 무심코 들은 비난의 말 한마디가 잠 못 이루게 하고, 정 담아 들려주는 칭찬의 말 한마디가 하루를 기쁘게 합니다. 부주의한 말 한 마디가 파괴의 씨가 되어 절망에 기름을 붓고, 사랑의 말 한 마디가 소망의 뿌리가 되어 열정에 불씨를 당깁니다. 위로의 말 한 마디가 상한 마음 아물게 하며, 전하지 못한 말 한 마디가 평생 후회하는 삶을 만들기도 합니다. 말 한 마디는 마음에서 태어나 마음에서 씨를 뿌리고 생활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짧은 말 한 마디가 긴 인생을 만들고, 말 한 마디에 마음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러나 긴 인생이 짧은 말 한마디의 철조망에 갇혀서는 안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드러내는 말 보다는 밝은 미소와 침묵으로 조용한 물이 깊은 것 처럼 깊이 있는 말로 사랑과 감동을 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08년 10월 27일 목포정명여자중학교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