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月) 가슴을 채웁시다
![]() |
찬송:415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묵상: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없습니까?
신앙고백:사도신경
본문:“…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갈 6:11∼18)
말씀:이미 별세하신 한신교회 이중표 목사님은 어렸을 때 가난해서 점심 도시락을 가지고 가지 못한 적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점심시간이면 물을 잔뜩 마시고 혼자 뒷산에 올라가 하늘을 보며 외쳤다고 합니다. “빈 배는 물로 채웠는데 빈 가슴은 무엇으로 채울 것인가?”
배를 채우는 것과 가슴을 채우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배는 음식으로 채우지만 가슴은 음식으로 채울 수 없습니다. 솔로몬은 세상의 부귀영화로 배를 채웠지만 마지막에 “모든 것이 헛되다”고 고백함으로써 가슴이 채워지지 않았음을 밝혔습니다. 사람이란 가슴이 채워지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배를 채울 것인가, 가슴을 채울 것인가? 선택에 따라 종교인과 신앙인이 구별됩니다. 종교인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배를 불리려고 노력할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부족해 심지어 종교까지 자기 배를 불리는 데 동원합니다. 배를 불리려고 예배에 참석하고 봉사합니다. 그의 기도는 온통 배를 부르게 해 달라는 내용뿐입니다. “…저희의 신은 배요”(빌 3:18)라는 성경 말씀 그대로입니다.
본문에도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12절), “육체로 자랑하는 자”(13절)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들이 바로 종교인의 모습입니다. 이들은 율법 준수와 할례 등의 종교 행위로 자신을 자랑하고 그 만족감으로 배를 불립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다릅니다. 신앙인의 목적은 가슴을 채우는 것입니다. 그는 배가 고파도 찬송합니다. 그는 가슴이 채워지는 것으로 기뻐합니다.
한때는 바울도 종교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며 율법에 흠이 없음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변했습니다. 더 이상 그런 것을 자랑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 대신 자신의 가슴을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14절) 그는 비록 배는 고팠으나 가슴은 예수님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박국도 가슴을 채운 사람이었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이런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기도:주님, 우리의 욕망으로 배를 채우지 않게 하시고 주님으로 가슴을 채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