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가을수업

물음표와 느낌표 2006. 10. 23. 16:56

벧전 1:24-25 가을 수업 311장

 

 

  울긋불긋 단풍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익어갑니다. 그러나 거리에 나뒹구는 낙엽에는 낭만만이 아니라 애상도 담겨 있습니다. 한때는 녹색의 영광으로 치장한 나무에 온갖 새들이 날아와 축제의 노래를 불러주었습니다. 하지만 소슬한 바람에 가늘게 떨고 있는 지금의 나뭇잎은 인생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이렇게 가을은 떨어지는 낙엽에서 삶을 읽을 수 있는 계절입니다. 낙엽은 삶 읽기의 매력 포인트이자 위대한 생명력의 근원입니다. 낙엽은 나무 주변을 덮어 땅을 보호하고 썩으면 뭇 생물의 터전이 되고 먹이가 되는 생명 순환의 법칙이 담겨 있습니다. 다행히 우리 학교에는 이러한 무수한 삶의 기호들이 우리를 뒤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꽃과 나무들에서 피고 지는 것은 단지 낙엽과 바람소리뿐만이 아니라, 그것은 삶을 은유하는 또 다른 깨달음의 터전이 되고 우리에게 사색의 시간을 제공합니다. 그래서 구르몽 시인은 "시몬, 나뭇잎이 져버린 숲으로 가자"고 했는지 모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낙엽을 쓸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낙엽을 밟는 것이 가을의 가장 큰 행복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한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가는 낙엽 속 어딘가에 따스한 기운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낙엽은 그렇게 우리에게 추억과 낭만과 따뜻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또한 낙엽을 보면 옛 시인의 노래가 생각나고, 어린 시절의 많은 친구들이 정지화면으로 캡쳐되어집니다. 그래서 낙엽은 주우면 주울수록 알찬 생각의 밑거름 되고, 흩어진 것을 주워 모으는 열매를 거두는 땀방울의 의미가 되는가 봅니다. 그러기에 낙엽은 가을학교입니다. 첫째,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듯 살아 있는 모든 것은 때가 되면 사라진다는 진리를 가르칩니다. 둘째, 열심히 산 사람의 마지막은 아름답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다 죽은 스데반의 모습은 천사와 같이 아름다웠듯이(행6:15), 최선을 다해 살다 떠나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셋째, 아름다운 인생은 떠남을 통해서도 세상에 유익을 남길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낙엽은 숲 속의 하천을 살리는 일등공신이며, 홍수 예방에도 큰 도움을 주고, 토양을 보호하고 비옥하게 만들며,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터전이 됩니다. 넷째, 겨우살이를 준비하라고 가르칩니다. 감과 사과는 가을에 단맛을 그 몸 속에 저축하고, 국화는 서리가 오기 전에 부지런히 꽃을 피우듯 우리는 겨울이 오기 전에 빈 마음으로 용서하며 사랑을 고백하는 스스로의 참회와 결단의 준비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가을수업이 이처럼 중요한 것은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이 감동에 있고, 감동의 느낌표는 가을의 숲과 나무에 넘치도록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정명가족 여러분! 솔향기 가득한 오솔길을 따라 낙엽을 밟으며 구르몽 처럼 바람불면 속삭이며 영혼처럼 울어대는 낙엽의 소리를 들어보시지 않을래요? 저는 아이들과 함께 낙엽에 사랑한다는 말을 적어 바람에 날려보기도 하고,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읽어주세요.' 가요처럼 낙엽하나 주워들고 빙글빙글 돌리며 요리조리 들여다보며 아름다운 사랑의 편지를 써 내려가는 가을 수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누구라도 낙엽을 보면 시인이 되며 예술가가 된다는데 책장을 넘기듯 낙엽을 밟다 보면 본향을 향한 그리움도 익어가고 삶도 열정으로 타오를 것 같습니다. 때로는 낙엽을 태우면 갓 볶아낸 커피냄새와 잘 익은 개암냄새가 난다는 이효석님 처럼 낙엽을 태워보든지, 아니면 여름날의 열정을 잊지 못해 온몸으로 피멍드는 단풍잎을 주워 책갈피에 끼워 추억의 물을 곱게 드리우면 세상은 이보다 아름다운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가끔은 조재선 시인의 고백대로 바람에 몸을 맡기고 두 눈을 감고 "쉿! 가만히 귀를 기울여 봐/ 가지 끝에 숨죽인 낙엽하나/ 밤하늘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는" 낙엽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의 인생도 따뜻하고 아름답게 물들어 가고, 아울러 하늘이야기도 우리 가슴속 깊이 자리할 것이 분명합니다. (2006년 10월 23일 목포정명여자중학교 교직원예배 : 윤삼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