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17:20 산을 옮기고 싶습니까? 377장
윌리엄 파운드스톤의 [후지산을 어떻게 옮길까?]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처럼 황당한 질문을 다룬 이 책은 마이크로소프트사 등이 직원채용 면접시 사용했던 실제 문제 53개의 자세한 풀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질문은 서류와 단순면접으로는 알 수 없는 창의력, 순발력, 문제 해결력을 알아보려는 것으로 적어도 '모르겠다' '산을 옮길 수 없다'라는 답을 요구하지 않고 있음을 누구라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황당하게 보이는 이런 질문에 우선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가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면접관 또한 응시자의 정확하고 과학적인 답변보다는 질문을 대하는 태도, 문제를 풀기 위해 접근하는 방식, 재치, 성실성 등 대답을 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중시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과가 아니라 그 문제(산)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입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고 계시는 것도 이와 같지 않을까요? 사실 살면서 누구에게나 옮기고 싶은 산이나 이루고 싶은 산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을 옮길 수 있을까요?
이한규의 [사랑칼럼]에 실린 글입니다. 미국 시골의 통나무집에 한 병약한 남자가 살았습니다. 그 집 앞에는 큰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 때문에 집 출입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이 꿈에 나타나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집 앞의 바위를 매일 밀어라!" 그때부터 그는 희망을 가지고 매일 바위를 밀었습니다. 8개월이 지났습니다. 점차 자신의 꿈에 회의가 생겼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바위의 위치를 자세히 측량해보았습니다. 그 결과 바위가 1인치도 옮겨지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현관에 앉아 지난 8개월 이상의 헛수고가 원통해서 엉엉 울었습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이 찾아와 그 옆에 앉으며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왜 그렇게 슬퍼하지?" 그가 말했습니다. "하나님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대로 지난 8개월 동안 희망을 품고 바위를 밀었는데, 바위가 전혀 옮겨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네게 바위를 옮기라고 말한 적이 없단다. 그냥 바위를 밀라고 했을 뿐이야. 이제 거울로 가서 너 자신을 보렴." 거울로 갔습니다. 곧 그는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거울에 비춰진 남자는 병약한 남자가 아니라 근육질의 남자였습니다. 동시에 어떤 깨달음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지난 8개월 동안 밤마다 하던 기침이 없었구나! 매일 기분이 상쾌했었고, 잠도 잘 잤었지." 하나님의 계획은 '바위의 위치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그를 변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변화는 '바위를 옮겼기 때문'이 아니라 '바위를 밀었기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렇습니다. 산을 옮기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말씀대로 겨자씨만큼의 믿음만 있으면 됩니다. 바위를 옮기는 것이 아니라 미는 것처럼 시키는 그대로 믿고 순종하면 됩니다. 밀기만 하면 움직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입니다. '바위를 옮기는 표적'보다 '바위를 미는 순종'이 더 중요합니다. 순종과 성실보다 표적을 중시하게 되면 결과에 따라 실망하거나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우리 앞에 커다란 산이 놓여있는 현실에 낙심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환경과 상관없이 산을 옮기는 믿음을 연습하십시오. 그러나 결국 산을 옮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일 새벽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여인들이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 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들은 가면서 어떻게 그 무거운 돌을 옮길까 염려했지만 그것은 한갓 염려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에 의해 예수님의 무덤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산을 옮기는 믿음은 순종과 열정이 먼저입니다. 산을 옮기기 전에 나를 옮겨야 합니다. 우리 앞에 있는 어려운 환경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조용히 무릎꿇고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묵묵히 순종하십시오. 이미 우리 앞에 있는 거추장스러운 산은 바다로 옮겨져 있을 것입니다. (2006년 9월25일 목포정명여중 교직원예배: 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