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좋은 친구 있습니까'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예전에는 가장 많은 상담이 친구관계였는데
언제부턴가 친구 문제는 사라지고 진로문제로 바뀌더니
그나마 요즘은 상담을 하지않습니다.
쪽지 상담을 하고 집단 상담을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컴퓨터가 있으니 친구가 필요없고
경쟁사회이니 친구를 생각하고 배려할 여유가 없는 것 같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온 4명의 친구가 요즘 아이들에게는 없습니다.
학급도 대폭 감축하여 35명이 안되는 반이 많습니다.
학원에 과외에 친구와 어울릴 시간도 없습니다.
21세기는 노하우(Know how) 시대가 아니라 노후(Know who)시대라고 하는데
아이들은 관계를 소홀히 합니다.
그러다 보니 친구는 고사하고 부모 자식간의 관계도 하나님과의 관계도 엉망이 되어갑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임마누엘로 오셨고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앞으로도 세상 끝까지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지만
그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친구의 소중함을 말합니다.
둘이 가다 넘어지면 붙들어주고, 함께 자면 따뜻해지고, 둘이 싸우면 승리하지만
혼자면 어찌 되겠느냐고(전도4:9-12)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선하고 아름다운가고 찬양하며(시133:1)
주님도 둘씩 짝을 지워 보냅니다.
그만큼 친구가 소중합니다.
그대들은 이런 친구가 있습니까?
월남전에서 미국이 강력한 무기와 군사를 가지고도
악한 환경과 군대를 가진 월맹을 무너뜨리지 못한 것은
꿍아(함께 먹고)
꿍안(함께 즐기고)
꿍땀(함께 일하는) 때문이라고 합니다.
베트남은 함께 먹고 즐기며 일하며 똘똘 뭉쳐 하나가 되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는 거기에 하나를 더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짝꿍입니다.
우리와 함께 먹고 일하고 함께 있어줄 친구가 있으면 힘들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 짝꿍이 함께 웃고, 함께 울고, 함께 있어주는 좋은 친구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는 짝꿍은
내가 너희의 친구가 되었다고(요15:15) 말하는 주님이십니다.
나는 우리 동기들이 떨어져 있지만
사랑의 띠로 하나가 되어
늘 생각해주고 기도해주고 위로해주고 함께 있어주어 손잡아 줄 수있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꿍아 꿍안 꿍땀의 정신으로 함께 동역하며 사역하고
짝꿍 주님과 함께 영원히 동행할 수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