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도시락∼! 우리의 영원한 친구!1970년대. 그 때만 해도 참 사는 게 어려웠었나 보다. 정겨운 점심시간이 되면 양은 도시락을 열고 서로 반찬을 나눠 먹으며 깔깔거렸고, 가끔은 친구들과 밥을 조금 덜어내 놓고는 도시락에 가져온 반찬을 다 섞어 넣고는 고추장 한 수저 넣고 양은 도시락 뚜껑을 닫고는 지금의 칵테일 하듯이 도시락을 좌우상하로 흔들어댔다. 그러면 어느새 밥이 골고루 섞여서 비빔밥이 되곤 했습니다. 또한, 그 시절엔 혼 분식 장려운동이 실시되면서 도시락에 밥을 담을 때 보리가 50% 이상 섞여야만 도덕 점수에 10점을 더해주었습니다. 그래서 입안에서 굴러다니는 보리밥이 싫어 흰 쌀밥에 보리밥으로 살짝 위만 덮어 가지고 다녔는데 걸리면 손들고 벌을 서야했으며, 가끔은 달걀프라이를 밥 위에 얹어서 도시락을 싸오는 날이면 가장 행복한 맘으로 뚜껑을 활짝 열고 자랑하면서 먹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친구들 중엔 동그란 분홍 소시지를 달걀에 부쳐서 반찬으로 싸오는 아이가 있는데 그러면 왜 그렇게 그 소시지가 맛있어 보이는지...,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곤 했었습니다. 보통 대부분의 아이들은 콩자반, 오이지무침, 콩나물무침, 멸치볶음 어묵볶음 등이 주요 반찬이었기에 동그란 분홍소시지는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별거 아닌데도 그때는 왜 그리 부러웠던지... 그랬습니다. 많이도 어려웠습니다. 그 당시 도시락 하면, 딱 생각나는 건 누런 양은도시락에 그득그득 담긴 납작한 꽁보리밥과 한쪽에 좁다란 반찬그릇, 밥 위에 대각선으로 턱 걸쳐놓은 젓가락 말입니다. 이 삼위일체의 기본형 도시락이 한 시절을 강타했던 그 시절은 책가방조차 참 귀했습니다. 그러니 도시락 가방이야 제대로 있었을까. 책과 공책 위에 네모난 도시락을 두고 보자기로 꼭꼭 묶어서 등이나 허리춤에 훌렁 짊어지고 다닌 게 전부였으니까 말입니다. 검은 보자기(책보) 속에 누런 양은 도시락 함께 메고 가다보면 김치물이 흘러나와 책에까지 다 스며들어 시큼한 김치냄새를 풍기곤 하였습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친구가 싸온 반찬 나눠 먹기도 했으며, 젓가락하나 들고 이리저리 돌다보면 어느새 배가 불러있었고, 빈 도시락 넣고 달릴 때에는 젓가락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이젠 사라진 추억이 되어 버렸지만, 지금도 그때의 조개탄 난로며, 누렇게 탄 양은 도시락들과 시린 손 호호 불며 난로 주위에 모여서 재잘거렸던 그때 그 시절이 왜 이렇게 눈물겹도록 그리운지. 몇 십 년을 거슬러 올라간 추억의 그 자리 그 친구들은 지금 다들 어찌 사는지. 모두 건강하게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잘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해 봅니다. 그렇게 친구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장난 쳐가며 학교로 향했던 때가 벌써 30여 년 전 일이 되었습니다.

- 1980년대 점심밥도 따뜻하게―
스티로폼으로 된 보온도시락!
우와∼. 이건 정말 획기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때가 바로 좀 살기 좋아진 1980년대쯤이었습니다.
제법 모양새 있는 도시락을 들고 다녔었는데 제법 부자로 잘 산다는
친구의 도시락은 모양도 예쁜 보온도시락이었습니다.
물론, 요즘처럼 보온이 잘 되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엔 나름대로 얼마나 유용했는지 모릅니다.
난로 위에 올려두어도 시커멓게 태울 염려도 없었으니까.
1990년대, 식판에 담긴 오늘날의 도시락 급식! 도시락 싸다니던 우리 세대에겐 참 생소한 단어입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일부 도시학교에서는 이 급식을 시작했습니다. 급식의 시행으로 매일 도시락 반찬 걱정하는 어머니들의 수고와 고충이 이 때부터 좀 덜어졌고, 학생들의 책가방도 좀 가벼워졌습니다. 자기 자리에서 스테인레스 식판에 담긴 음식을 먹는 요즘 아이들. 밥 퍼주는 급식 당번도 정하고, 일렬로 서서 점심을 차례로 배급 받는 가운데 질서의식도 터득합니다. 급식 덕에 아이들의 성장발육을 염려하는영양사선생님도 있게 되고,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사도 지금 어린이들은 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에 물들어 편식만 하던 아이들은 억지로라도 점심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일까지 벌어지고 또한 급식은 전국 학교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입니다.
- 지금 온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일부 몰지각한 급식업체의 얄팍한 상혼(商魂)으로 학생들의 몸과 마음이 멍들고 있습니다.
40개교 급수도 중단…집단 조퇴ㆍ기말고사 연기
학교마다 도시락 `공수작전'…학교급식 위생 점검 조기방학...
요 며칠 사이, 하루 종일 귀가 따가울 정도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 학교급식사고는 한참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급식은 제14대와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전면도입이 공약으로 제시되어
- 1997년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현재 초·중·고등학교의 90%이상에서 전면 실시되고 있고,
- 운영형태는 초등학교는 거의 전부가 직영급식이며 고등학교의 57%,
- 중학교의 47%가 위탁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중소도시 및 농촌소재 학교는 직영급식이많은데 비해 대도시소재 학교는
- 위탁급식이 대부분으로 서울시의 경우 고등학교의 95%,
- 중학교의 거의 대부분이 위탁급식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 위탁급식은 급식을 외부업체에 맡기는 것을 일컫고 직영급식은 학교 측이
- 영양사 및 조리사를 두고 직접 급식을 운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산상의 제약으로 1996년 학교급식법을 개정하여 영리에 기초한 위탁급식을
- 허용하고, 급식시설 설치비용의 일부를 급식공급업체에 전가 하였습니다.
식품위생법상(제2조) 집단급식소는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고
- 규정되어 있습니다. 직영급식은 조리원의 인건비와 운영비를 제외하면
- 거의 식품비로 사용하고 있으나, 위탁급식은 영양사, 조리사, 조리원인건비,
- 운영비에 이윤까지 창출해 내어야 하고, 막대한 시설, 설비비를 투자한 위탁업체는
- 계약기간 내(3년)에 투자자금 회수를 위해 저급, 수입농산물을 사용할
-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말도 있지만, CJ푸드시스템은 학교 급식 직영화가
-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오늘부터 전국 93개 초중고 뿐만 아니라 35개
- 대학의 학교 급식사업에서 철수하기로 결정하였고,
- 학교 급식 직영화가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이미 투자한 급식시설을
- 아무런 조건 없이 해당 학교에 무상 기부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위탁이 직영으로 바뀐다고 해서 식중독 사고가 안 일어나는 건 아닙니다.
그래도 업체에서 모든 걸 책임지고 급식을 하는 것 보다는
학교장, 교사, 학부모가 나서서 직접 관심을 가지고 급식을 운영하는
직영체제가 더 안전하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부모들이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국가적 차원에서 학교급식의 제도를 보완 개선하여
- 학생들의 건강을 담보로 상술에 빠져 들지 않도록 해야겠으며,
- 학생들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도록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 학교급식을 정착시키고,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하는 등
올바른 대안을 세워 나가야 할 때 인 것 같습니다.
시끌벅적 교실 책상 맞붙이고 이리저리 설치던 우리 어린 시절 점심시간.
반찬은 지금의 급식보다 좀 다양하지 못했지만, 엄마의 손맛이 담겨있던
그 도시락을 까먹던 때가 자꾸 생각납니다.
도시락만을 전문으로 하는 업체가 생겨나 호황을 누리고
외식 산업이 발달됐다는 요즘, 급식을 하지 못하는 학교에서는 점심시간에
인근 편의점에서 라면, 빵으로 한 끼를 해결하고, 짜장면, 피자, 김밥이
교실로 배달되는 현상이 벌어지고 또, 일부 고등학생들은 불판 가져 와
상추쌈에 삼겹살 구워 먹는 모습에 얼마나 웃었는 지 모릅니다.
이런 것들로 보아 그간 얼마나 편안한 엄마였나를 생각하게 해 주었습니다.
멀리 통학하는 아들을 위해 깜깜한 새벽에 일어나 비바람 맞으시며
도시락 싸던 우리네 어머니들에 비하면 얼마나 편한 생활들이었습니까.
급식비만 내면 학교에서 점심 저녁까지 다 해결 해 주었으니 말입니다.
다시 학교급식이 제자리를 찾을 때까지라도
내 아이를 위한 엄마의 사랑과 정성이 가득 들어있는
따뜻한 도시락을 먹게 해 보는 게 어떨까?
나의 흘러간 추억을 되새겨 보면서....

출처 : 고요한 산사의 풍경소리
글쓴이 : 저녁노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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