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교회 중등부 교사에게 보내는 편지 (15)
샬롬!
며칠동안 봄비가 내렸습니다. 하지만 큰 빗줄기도 아니고 차가운 날씨도 아니었기에 금방 그치려나 싶어서 창 너머를 하릴없이 자주 내다보았습니다. 마치 누군가가 밖에서 서성이는 듯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는 그리움 때문이었습니다. 아이 손 같은 싹이 행여 다칠세라 비는 조용조용히 곱게 내려주었지만, 한번의 비로 온 세상은 푸르게 바뀌고, 메마른 제 마음의 사랑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자연은 그렇게 하나님의 신비를 노래했고 제 가슴도 덩달아 황홀하게 뛰었습니다. 이처럼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축복으로 오늘도 행복한 날입니다.
누가 뭐래도 봄은 꽃의 계절입니다. 죽은 것만 같은 나뭇가지에서 움이 돋고 꽃이 피는 것을 보면, 그저 신기하기만 합니다. 마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작은 풀꽃들 또한 경이롭기 짝이 없습니다. 분홍빛 철쭉, 하얀 배꽃, 연분홍 빛 복사꽃, 노란 유채꽃, 늦게 핀 벚꽃 바람결에 휘날리는 모습 형형색색 이루 말할 수 없는 봄날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봄꽃 중에는 유난히 흰색이 많습니다. 백목련, 벚꽃, 배꽃, 사과꽃, 앵두꽃, 살구꽃, 복사꽃, 조팝나무, 은방울꽃, 솜다리(에델바이스), 하얀 팬지, 라일락, 난초, 아네모네, 오렌지 등…. 마치 외모의 화려함 대신 내면의 향기로 아름다움을 노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자꾸만 흰색 꽃들에게 눈이 가고 마음이 갑니다. 사람도 화려한 외모보다는 내면의 향기를 머금은 사람에게 더 끌리듯이 말입니다. 흰 꽃은 눈부시지 않아서 좋습니다. 은은함과 소박한 아름다움이 선남선녀 같아 더 친근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화려한 색깔의 꽃들이 눈부신 햇빛이라면 흰옷을 입은 봄꽃들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빛이요, 달빛입니다. 그 수줍은 웃음과 부끄러움의 미학이 우리네 백의민족과 닮았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흰 꽃이 아름다운 것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피어나는 부활의 꽃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꽃에는 아름답고 따뜻한 향기와 함께 그리스도의 향기가 묻어있기 때문입니다. 부활절 아침 하얀 소복 입은 여인들의 희망 때문입니다.
봄빛이 화사한 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도 늘 화사했으면 좋겠습니다.
봄빛이 푸근한 만큼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도 늘 푸근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사랑을 시샘하여
삶이 겨울바람에 매섭게 시달릴 때도
우린 함께여서 늘 위로가 되었고
우리의 믿음을 포기하려
삶이 은빛 찬란한 손길로 유혹할 때도
우린 눈을 감고 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기에 내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그 모습대로 늙지 않고
마음을 기대면 한없이 평안한
봄빛의 아침이 되고 또 저녁이 되어
늘 함께 소망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오광수/언제나 봄빛같이)
살아간다는 것은 행복입니다. 살아간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주님이 주신 이 아름다운 땅에서 주님의 사랑을 만끽하며 이웃에 사랑을 전하는 행함이 따르는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아름다운 사랑입니다. 방긋 웃는 미소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의 향기를 전하는 행복의 하루였으면 합니다. 칭찬과 격려의 말로 만나는 사람들에게 주의 부활을 전하는 축복의 하루였으면 합니다. 또한 우리의 행복과 축복이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수고로 우리 아이들에게도 전해지길 소망합니다. 바이러스는 종류에 따라 전파경로가 다양하다고 합니다. 혈액이나 체액처럼 직접적인 신체접촉을 통해서만 전파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공기를 통해서 쉽게 전파되는 것도 있습니다. 행복과 축복바이러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는 대상이나 경로가 저마다 다르듯이 다양하게 전파될 수 있습니다. 전화 한 통화로, 문자 몇 마디로도 행복해지는가하면, 때론 얼굴을 보고, 손을 잡아야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무튼 작게만 여겨지는 선생님들의 관심과 사랑으로 주님의 향기와 축복의 바이러스는 지금도 번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유명한 동화 작가 안데르센은 어린 시절 글쓰기를 좋아하긴 했지만 정작 글을 잘 쓰지는 못했습니다. 열한살 때, 안데르센은 나름대로 힘들여 쓴 작문을 들고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글을 읽은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무안함과 실망에 빠진 안데르센은 집에 돌아와 서럽게 울기 시작했습니다. 울고 있는 아들을 본 안데르센의 어머니는 그의 작은 손을 잡더니 화단에 데리고 갔습니다. "한스야, 여기 이 꽃이 참 예쁘게도 피었구나. 하지만 이 꽃 옆엔 싹이 난 지 얼마 안 된 아주 작고 어린 잎사귀도 있잖니? 이 잎사귀는 자라려면 아직 멀었다. 이 작은 잎사귀도 자라면 예쁜 꽃을 피울게다. 넌 아직 이 어린 잎사귀와 똑같다. 그러니 언젠가는 환하고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을 거야." 어머니는 훌쩍이는 아들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 뒤로도 여전히 안데르센의 글 솜씨는 사람들에게 좀처럼 칭찬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안데르센은 절망에 빠져 울고 싶을 때마다 그 말을 기억하고 마침내 위대한 동화작가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지극히 작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이 지나면 그것은 예쁘고 이름다운 꽃으로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미국의 샤갈로 불리는 리버만이라는 화가가 있습니다. 그는 74세에 은퇴한 후 바둑을 두며 소일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바둑 파트너가 약속을 어겨 혼자서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젊은 봉사요원이 "그림을 한번 그려보시지요"라고 권했고 리버만은 곧 바로 화실을 찾아가 10주간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그가 81세 때의 일입니다. 리버만은 일약 원시의 눈을 가진 미국의 샤갈로 불렸고 그림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그는 101살에 스물 두 번 째 개인전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심장의 고동이 멈추기 전까지는 그 어떤 것도 헛되지 않고, 너무 늦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우리가 시도하지 않고 있을 뿐입니다. 복음중등부의 비전도, 우리 아이들의 꿈도, 그리고 우리들 각자의 꿈도 이루어지지 않은 게 아니라 어쩌면 아직도 시도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이제 주님의 부활과 함께 Together Day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시작합니다. 무엇보다 거룩과 경건을 회복하는 것이 부흥입니다. 그리고 거룩과 경건의 시작은 예배입니다. 홀리키퍼(Holy Keeper)운동으로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며, 우리 함께 힘을 모아 복음중등부의 희망나무를 심고 키워가길 소망합니다.
우리들에게 맡겨진 귀한 직임이 봄비가 되어 아이들의 희망 꽃을 피웁니다. 봄꽃들의 축제가 보여주는 것처럼. 비록 더디 올지라도 선생님의 수고와 사랑은 분명 봄꽃으로 활짝 피어날 것입니다.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선생님의 귀한 사역은 소리 없이 기적을 일구어 가고 있습니다. 선생님 여러분은 생명을 불러오는 봄비입니다. 힘내십시오. 오늘도 주님의 모습을 닮아가려고 애쓰고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의 삶에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2006년 4월 15일
기적을 일구는 봄비가 되고픈 여러분의 친구 윤삼열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