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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나무에게 배우는 영성

물음표와 느낌표 2006. 4. 12. 12:14

나무에게 배우는 영성

 

  해마다 4월이면 고요하던 나무들이 기적같이 움을 틔워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릅니다. 촉촉하게 내린 봄비로 물오른 나무처럼 싱싱하고 상쾌한 하루입니다. 잠시 눈을 감고 귀기울여 보면 마른 나무에 수액이 오르는 소리, 여기저기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가슴을 파고듭니다. 특히 식목일이 있어 나무와 풀과 꽃과 온갖 식물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 더욱 좋습니다. 우리에게 친숙해진 식목일의 역사는 신라가 당나라의 세력을 한반도로부터 몰아내고 진정한 삼국통일을 이룩한 날(문무왕 17년 2월 25일, 양력 4월5일)과, 조선의 성종이 선농단에서 직접 논을 경작한 날(1343년 성종 24년 3월10일, 양력 4월5일)에서 유래합니다. 따라서 이 날은 단순한 식목일이 아니라 민족의 통일을 이룬 날이며, 왕이 직접 농사를 지은 나라사랑과 농림사상이 함께 하는 뜻 깊은 날입니다.

 

  또한 기독교인들에게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지키시며 축복하셨던 생명이 넘쳐나는 사랑의 에덴동산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불순종하여 따먹어 버린 선악과 열매를 보면서 에덴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임을 고백하는 날이 식목일입니다. 그러므로 식목일은 그저 나무만 심는 날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뽑혀진 선악과를 다시 심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악과를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모시며, 하나님을 최고의 통치자로 삶의 중심에 모시는 것입니다. 산의 푸르름을 위해 나무를 심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신앙의 회복을 위해서도 나무를 심어 이 땅에 기쁨과 평화가 넘치는 에덴의 삶을 회복하고, 나아가 자연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교훈을 배울 수 있는 영적 식목일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나무에게 많은 것을 배웁니다. 봄에 싹을 틔우고, 여름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고, 가을에 열매를 맺고, 겨울에는 솔직한 모습으로 안식을 누리는 모습은 우리 인생을 보여줍니다. 긴 세월동안 한자리에서 묵묵히 굳센 심지와 생명으로 살아가는 나무에게 겸손의 미덕을 배우며, 혼자서만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숲을 이루는 모습에서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협력을 배웁니다. 봄에 여름 흉내를 내지 않고, 겨울에 가을 모습을 하지 않고, 매 순간 제 시간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에서 순리대로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배웁니다. 겨울을 당당히 버텨내는 나무에게서 역경을 이겨내는 강한 생명력을 배우고, 햇볕이 따스할 때 나고 바람이 차가울 때 들어가는 것을 보며 날 때와 들 때를 구별하여 배웁니다. 어떤 모진 바람에도 쓰러지지 않고 청청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정조를 배우고, 바람 소리 빗소리 천둥소리를 다 들어도 듣기만 하고 말하지 않는 침묵의 지혜를 배웁니다. 수많은 열매를 아낌없이 나눠주고, 잎사귀들을 훌훌 떠나보내면서도 숙연하게 보여주는 희생과 헌신은 자신만을 챙기는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사람이든 짐승이든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받아들이는 넓은 가슴과 포용은 나무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여유를 배웁니다. 칼바람에도 아랑곳없이 의연하게 양팔을 높이 들고 기도하는 겨울나무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삶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나무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우리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신(벧전2:24) 주님을 봅니다. 나무는 십자가 이전부터 주님을 닮았습니다. 주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에게 오라(마11:28)고 하시며, 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주님이 생명나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는 또 다른 기쁨으로 다가옵니다. 주님은 산소를 내보내고 탄소를 빨아들이는 나무처럼 우리에게는 생명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러므로 다 바치고 십자가 나무 결로 서있는 주님에게 거룩함을 배워야 합니다. 다 내어주고 껍데기로 서있는 주님에게서 평화를 배우고, 다 태우고 한줌 재로 서있는 주님에게 희망을 배워야 합니다.

 

  특히 뿌리깊은 영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나무에게 배워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 형통함(시1:3)을 배워야 합니다. 나무를 영어로 Tree라고 하는데, 이 말은 진리를 뜻하는 True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토록 나무는 참되며, 유익하며 많은 깨우침을 줍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단어인 '휴식(休息)'이라는 한자어도 나무가 없으면 성립되지 않는 글자인 것을 보면, 나무를 떠나서는 참된 쉼도 진리도 얻기 어려운가 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나무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특별히 뿌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나무의 미래가 뿌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뿌리가 어디에 심기느냐에 따라, 또 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깊게 그리고 넓게 뻗어 있느냐에 따라 나무의 견고함과 질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려야 건강하듯 우리도 겉으로 드러나는 타이틀보다는 내면의 실력과 전문성을 키우고, 흔들리지 않는 영성과 믿음을 위해 삶의 뿌리를 생수가 되신 주님께 깊이 내려야겠습니다. 그래서 늠름한 소나무나 느티나무처럼 지금은 작고 보잘것없는 새싹일지라도 훗날 세상의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기둥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식목의 주간을 통해 마당과 들과 산에 꽃과 나무를 심으며, 아울러 우리의 마음 밭에도 꿈과 행복의 나무를 함께 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무에게서 삶의 지혜를 배우고 우리의 영혼도 잘 가꾸어가기 원합니다. 그러면 나무와 함께 마음도, 꿈도 믿음도 무럭무럭 자라날 것입니다. 또한 나무를 키우듯 사람을 세우고 키우는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땅에 희망의 나무를 심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믿음을 심는 것이며,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일은 소망을 삼는 것이며, 정성껏 가꾸고 돌보는 일은 사랑을 심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나무든 사람이든 텃밭에 잘 뿌리내릴 수 있도록 거름주고, 물주고, 관심으로 키워 낸다면 산에는 나무가 우거지고 동네에는 인재가 넘쳐나는 아름다운 열매와 풍성한 수확을 우리에게 안겨 줄 것입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간절하게 바라는 것은 한 그루 생명나무가 되어 우리에게 쉼을 주시며, 생명을 주신 주님처럼 한 그루 나무로 자라고 싶습니다. 그래서 천한 여물통일지라도 주님을 모신 구유가 되고 싶고, 초라하게 만들어진 나룻배이지만 풍랑을 잔잔케 하신 주님을 태우고, 먼지 구석에 버려진 나무토막으로 치욕스런 십자가 될지라도 나를 바라볼 때마다 주님이 생각나게 하고 싶습니다. 사랑의 주님 저로 한 그루 나무되게 하소서!   


 
나 이제 나무가 되리라
흙에 뿌리내려
비와 바람을 친구 삼아
땅의 기운을 올리어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푸른 잎 내고
따가운 햇빛 받아
소리 없이 그늘이 되고
삶이 되어
천태만상으로 살아
낙엽으로
땅에 떨어져 생명을 기꺼이 내 놓음이
새 생명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어
거듭 태어나도 변하지 않는
흙과 어우러져 사이좋게 지내는
그 청정한 나무가 되리라 (김진희/나 이제 나무가 되리라) 

 

(목포극동방송 2006년 4월 4일 비전칼럼)

 


 

출처 : 교목전국연합회
글쓴이 : 윤삼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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