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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꼴레르

물음표와 느낌표 2014. 4. 28. 16:54

 

브리꼴레르 (고전12:27-31) 374

 

학교 교육 특히 기독교교육은 붕어빵 찍어내듯 기술자를 만드는 학교가 아닙니다. 스펙을 위한 과정도 아니고, 좋은 대학에 가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학교가 공부하는 곳이기는 하지만 공부의 목적이 성공이나 출세 또는 거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목적이 잘못되면 모든 게 잘못됩니다. 가끔 공부는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공부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의 본분 즉 사람답게 살기 위함이 먼저입니다.(12;12~13) 공부를 잘 하면 선택의 폭이 넓어져 좋을 수 있어도 평균점수 올린다고 인생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공부를 통해 사람을 배우고, 사람의 예를 갖추고,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정신을 배우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공부의 또 하나 중요한 목적은 나에게 숨겨진 달란트(재능)을 찾아내는 일입니다. 광부가 광산과 광맥을 찾듯 밭에 감추인 보화를 찾는 일이며(13:44), 좋은 진주를 구하는(13:46)일입니다. 그리고 발견한 광산을 삽으로 파헤치듯 수고와 땀과 기도의 삽으로 원석을 캐내어 그것을 갈고 닦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꿈과 비전을 찾는 일입니다. 이 일은 돈이 없다고, 성적이 뒤떨어진다고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학교는 꿈과 비전을 찾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다양한 경험을 시도하고 도전합니다.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사람이 교회에서 치유의 꿈을 꾸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되는 꿈을 꾸고, 포로된 사람이 자유함을 꿈꾸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 꿈을 위해 무엇이든 도전해 보는 곳입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아니 실패할수록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얻게 됩니다. 그래서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사람에게도 관심을 갖습니다. 다양한 사람이 모여 사는 유기체인 까닭입니다. 학교와 교회는 스펙쌓기가 아닌 브리꼴레르를 찾는 곳입니다.

 

유영만 교수는 그의 책에서 이상적 인재상으로 브리꼴레르(Bricoleur)를 이야기합니다. 브리꼴레르라는 인재상은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아프리카 원주민을 관찰하면서 나왔습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설명에 따르면, 브리꼴레르는 보잘 것 없는 판자조각, 돌멩이나 못쓰게 된 톱이나 망치를 가지고 쓸 만한 집 한 채를 거뜬히 지어내는 사람을 지칭하며, 굳이 번역하자면 [손 재주꾼]입니다.

 

 

 

유영만은 브리꼴레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들은 지식을 체계적으로 축적해서 실력을 쌓은 전문가라기보다 체험을 통해 해박한 식견과 안목을 갖게 된 실전형 전문가로, 첫째, 끊임없이 변화되는 분야 간의 차이를 탐구해나가는 인재입니다. 자기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야 할 뿐 아니라, 분야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에 주목해야 합니다. 둘째, 학문적 통섭보다 현실적으로 가능한 융합을 추구합니다. 융합형 전문가로서 세상의 모든 지식을 편집하고 가공해서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 편집자이며, 이질적 정보를 융합해 새로운 지식을 창조하는 지식의 연금술사입니다. 셋째, 주어진 문제에 대한 모범답안을 찾는 모범생이기보다 모험가에 가깝습니다. 말을 잘 듣고, 시키는 일도 잘 따라 하지만 그보다 자신의 가능성을 발굴하기 위해 이제까지 해보지 않은 일, 가보지 않은 곳, 읽어보지 않은 책, 보지 않았던 영화 등을 보면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합니다. 넷째, 책으로 배운 논리적 사고보다 몸으로 배운 야생적 사고로 무장합니다. 다섯째, 장인적 기질과 전문성에 머무르지 않고 상황에 따라 즉흥적으로 임기응변을 발휘해 관객의 요구하는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재즈연주자입니다. 여섯째, 자신이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재능을 찾아 최고 경지에 이르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일곱째, 야생의 사고와 실천적 지혜로 무장한 행동하는 인재입니다. 여덟째, 냉철한 판단력과 함께 따뜻한 가슴, 그리고 과감한 추진력을 겸비한 전문가입니다. (유영만 [브리꼴레르]에서)

 

 

그럼 왜, 이러한 브리꼴레르가 필요한 것일까요? 앞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직면하게 될 위기는 한두 가지의 지식과 한두 번의 시도로는 극복하기 어려울 만큼 난해하고 복잡합니다. 따라서 책상머리에서 배운 좁은 지식에서 벗어나 과감한 추진력과 역발상으로 불가능에 도전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역경을 뒤집어 남다른 경력으로 만들어가는 지식인 즉 브리꼴레르가 되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누가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을까요? 브리꼴레르의 특징은 하늘이 무너져도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고 생각하는 절대긍정의 사고방식과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 주어진 문제를 반드시 해결할 수 있다는 도전정신입니다. 그러기에 주어진 조건이 갖춰져야 물건을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다소 부족하고 관련없어 보이는 재료들로도 새로운 성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능력이 브리꼴레르의 핵심역량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한계에 도전하는 정신과 자세를 가진 그리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이 브리꼴레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이런 리더와 인재가 되고 싶어 하는데 어떻게 가능할까요? 자신의 전문분야를 깊이 파고들어 튼튼한 기반을 닦고, 정보편집과 지식융합 그리고 다양한 도전을 통한 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유영만 교수는 읽는 책을 바꾸고, 부딪히는 체험을 바꾸고, 만나는 사람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다양한 역량을 갖춘다고 스펙을 쌓아보지만, 그것도 천편일률적이어서 차별화가 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상황은 안중에 없이 오로지 정해진 규칙과 관행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전문가들은 그다지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당연한 것이나 원래 그런 것은 없습니다. 단지 그렇게 보일 뿐입니다. 미꾸라지 사는 곳에 메기 한 마리를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는 불편하지만 미꾸라지는 더 건강하게 더 오래 살 수 있고, 진주 속으로 들어온 불편한 모래알이 결국은 영롱하게 빛나는 진주를 만들어냅니다. 그렇듯 낯선 분야, 편하지 않은 사람, 뇌리에 주먹질을 해대는 책으로부터 받는 불편한 자극이 삶을 살아 숨 쉬게 만듭니다. 그런고로 브리꼴레르는 서로의 차이를 지식으로 만드는 융합형 인재이며, 역경을 경력으로 만드는 야생적 사고의 소유자이고, 하나의 정답이 아니라 다양한 현답을 찾는 실천적 지식인인 것입니다.

   

 

요즘의 학교 교육은 많이 변했습니다. 체험위주의 테마학습과 나눔을 위한 봉사활동,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 등이 그 대표적 예입니다. 또한 장애인과 함께 하는 통합교육은 물론 다문화교육도 실시하고, 학교사회복지사와 전문상담사를 투입하여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프로그램도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사는 사회는 전문가나 지식인만 필요한 사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같은 유기체라는 것입니다. 뇌도 건강해야 하지만 눈도, 코도, 입도, 목도, 팔다리도 모두 건강해야 합니다. 잘난 사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교육이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어떻게 보면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고전1:26-28) 하셨습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교육은 잘난 사람 못난 사람, 있는 사람 없는 사람 구별없이 차별없이 모두 함께 꿈을 꾸는 희망입니다. 바라기는 우리학교는 희망을 노래하는 수많은 브리꼴레르를 키워내는 주님의 학교이길 소망합니다.

 

 

 

교육현장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있고, 장애가 있습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피하면 회피, 부딪히면 해피라고.

피하는 자는 황금을 피하는 것이지만, 부딪히는 자는 광맥을 발견합니다.

돌에 부딪히면 깨지지만, 삶에 부딪히면 면역으로 희망이 생깁니다.

기회에 부딪히고, 고난에 부딪히고, 어처구니에도 부딪혀야 합니다.

부딪혀야 브리꼴레르 아니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나옵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4년 교직원예배설교: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