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주세요 (사43:1-2) 91장
부른다는 것, 이름을 부른다는 것, 그것은 잠든 것을 일깨운다는 것이며 멀리 있는 것을 가까이에 다가서도록 하는 것이며 침묵하는 것을 말하게 하는 것입니다. 어느새 새로 한 주를 다시 시작하는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아이들의 이름은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시작하는 것은 어떨까요? 일상에 잠들어 있던 정감과 살가움이 오롯하게 되살아나도록 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잃어버렸던 젊은 날의 열정이 살아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잃어버렸던 정체성을 되찾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잃어버렸던 꿈을 되찾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불러주십시오.
그들은 꽃이 되어 다가올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의미를 발견할 것입니다.
세상 모든 만물에는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은 물론이고 하늘과 구름, 땅과 바다, 하다 못해 조그만 풀꽃, 돌멩이 하나에도 이름이 있습니다. 물론 아담에 의해 지어진(창2:19)것이 대부분이지만 이름은 일반적으로 각자의 특성에 따라 지어집니다. 특히 사람은 보통명사의 이름이 아니라 개체 하나하나 즉 모두에게 고유한 각자의 이름이 있습니다. 아담이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에 각자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것입니다. 이름이 있다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먼저 이름이 있다는 것은 존재한다는 실체를 말합니다. 그리고 그 실체는 이름에 의해 의미가 부여되고, 규정되어지거나 구분되어지며 어떤 틀을 갖게 하고, 서로 다른 이름과의 관계가 형성되어지며, 사람에게 있어서는 인격체로 존중받고 특별한 존재로 인정받는 일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의미는 그렇게 불러진다는 것이고, 불려짐으로서 가치를 갖게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꽃 - 김춘수)
김춘수님은 내가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도 나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이지요. 즉,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꽃이 내가 이름을 불러주었기에 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기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태어나면서 부모님으로부터 그리고 자라면서 가족, 친척 및 친구들로부터 불리움을 받습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다만 입으로만 소리를 내어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입으로 부르면, 마음에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고, 마음에 그 사람을 생각하면 마음이 그 사람에게 접근해집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입으로 말하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감'이란 영화에서 김하늘이 하는 대사 중에 "그가 부르는 내 이름이 왜 그렇게 이쁘니?" 하며 병원침대에 누워서 친구에게 하는 말이 생각납니다.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주어 뒤돌아보았을 때 반길 수 있는 정겨운 얼굴이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입니까? 또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과의 추억이 되살아나 굳었던 얼굴에 피식 웃음이 새 나오고 쓸쓸하고 외로운 마음이 따스해 지면 얼마나 좋습니까? 저는 그럴 때가 많습니다. 이상하게도 누군가의 이름을 한번 되뇌어 본다는 것은 아리아리한 첫 사랑의 추억을 되새기는 것처럼 가슴 설레고, 보고 싶고, 그리워지니 말입니다. 특히 어머니를 부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이미 하나님 나라에 계시기에 더 그런지 모릅니다만 어머니란 이름은 부를수록 들을수록 마음이 아리도록 엄마가 그리워집니다. 그래서 가수 혜은이와 머라이어 케리는 "마음이 서글플 때나 초라해 보일 때에는 이름을 불러주세요 나 거기 서 있을게요"라고 노래했나 봅니다.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만큼 아름다운 음악은 없을거라 생각합니다. 어떤 직업이나 사회적 위치나 막연한 타인으로 불리는 이름가운데 내가 존재하는 것보다, 누군가 소중한 사람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고 기억해 준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감옥에 있는 죄수들에게도 이름이 있지만 그들을 부를 때는 그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그들의 번호를 부릅니다. 사람을 부를 때 이름을 부르지 않고 번호를 부른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격하시키는 행위입니다. 그만큼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이며 관심이며 사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실은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우리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기 원하십니다. 유진 피터슨이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존중한다는 것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선택한다는 것이다."고 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따뜻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금도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비전 가족 여러분! 지금 조용히 속삭이듯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세요. 부르는 그 순간 주님은 거기 계실 것입니다.
작은 것들 모두에게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싶다./ 꽃들에게도, 풀잎에게도, 물방울에게도/ 내 기쁨을 두 배로 해주고/ 내 슬픔을 반으로 줄여주는/ 친구에게도/ 세상에 나밖에 없다는 너에게도/ 가만히 불러보는 이름만으로도/ 왜 이렇게 가슴이 뜨겁고 아픈 것일까!/ 이름 부르는 일이 그립다는 말보다/ 왜 이렇게 더 간절한 것일까! (천양희 '이름을 불러주고 싶다')
징기스칸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리더십의 비결 가운데 하나가 그가 거느린 장졸들을 계급이나 직책으로 부르질 않고 반드시 이름을 알아 불렀다고 합니다. 어느 단체나 마찬가지겠지만 계급사회로 구성된 특정 집단인 군대에서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명령체계에 의한 타율적 통솔이 아니라 자율적인 그리고 객관화된 개체로서가 아니라 일대일(1:1)의 인격적인 관계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은 산행을 하다가 무심코 지나쳤던 나무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며 "아, 네가 상수리나무구나 너는 키가 크구나. 넌 아주 오랫동안 이 산을 지키고 있었을 것 같구나. 글구 꿀밤나무, 참나무라고도 불리지? 그러고 보니, 이런 노래가 생각난다. '커다란 꿀밤 나무 밑에서 그대하고 나하고 정다웁게 얘기합시다. 커다란 꿀밤 나무 밑에서.'"라고 말을 걸었더니 마치 산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다고 합니다. 나무도 그러할진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지금 어느 직장에서는 여사원들이 미스박, 미스김 하는 미스 호칭 거부 풍조가 일고 있다고 합니다. 미스 호칭의 거부는 바로 이름으로 불려 인격적 대우를 받고 싶다는 인간선언이요, 이유있는 반항이라고 할 것입니다.
그럼 과연 이름을 불러주면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이름을 불러주면 우선 친근감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제비족들이 이름을 자주 부른다고 합니다만 일리있는 말입니다.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 친근감을 느끼는 것은, 자기가 어떤 식으로 불리는가에 따라 상대방에게 대한 인상도 바뀌게 되는데, 이름을 불러주면 그 잠재 심리가 자극되어 기분이 좋아지고, 상대에게는 호감을 갖게 되고, 서로에게 친밀감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이 가진 모든 느낌도 함께 불러오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뽕나무 위에서 지켜보던 삭개오에게 이름을 부르실 때, 그는 곧바로 주님을 집에 모시고 신앙고백을 하며(눅19;1-10) 살아있는 한 송이 의미있는 꽃으로 주님 곁에 다가갈 수 있었듯이, 이름을 부르는 것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되고, 자신이 중요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갖게 하는 가장 좋은 칭찬이 되는 것입니다. 시집가는 딸에게 가르치는 내훈(內訓) 가운데, 시집가서 시어머니에게 말씀드릴 때는 반드시 어머님이란 말을 말머리나 말끝에 꼭 붙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장에 다녀오겠습니다'가 아니라 `어머님 장에 다녀오겠습니다'하고, '제가 하겠습니다' 할 때도 '제가 하겠습니다. 어머님'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서로 가깝게 느껴져 불화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을 우리 선조들은 간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즉 이름을 불러주는 것은 상대의 마음을 열게하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색하면 이불을 뒤집어쓰고라도 우리 이름을 불러봅시다. 주님! 엄마! 아빠!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도, 한번 크게 불러보세요. 오래된 서양 마법에 의하면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면 그 이름이 불려진 사람은 신비한 힘에 이끌려 이름을 불러준 사람에게 끌리거나 따라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동물의 이름을 불러주면 동물도 따르게 된다고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이름을 불러줄 때마다 마법을 걸고 또 마법에 걸리는 중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습니까? 하지만 먼저 사랑하는 사람들과 친구들의 이름을 불러 보시길 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한 사람 한사람을 소중히 여겨 이름을 불러주는 그런 사랑 많은 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새 아침을 맞이하며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가족과 친구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할 수 있기 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나즉히 불러보십시오. 주님은 여러분 곁에서 활-짝 웃고 계실 것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0년 6월 21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 2004년비전칼럼 앵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