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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 (신11:18-21) 420장
애덤 쉥크만이 감독하고 애덤 샌들러가 주연한 [베드타임 스토리]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스키터(아담 샌들러)가 조카들에게 잠자리에서 해준 이야기가 현실에서 실제로 일어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린 가족 영화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벤허의 주인공이 되어 콜로세움을 질주하고, 서부개척시대에 미녀를 사로잡는 로맨틱한 카우보이가 되고, 또 우주에서 무중력 속의 결투를 벌이는 투사도 되는, 그야말로 시공을 초월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되는 마법같은 1주일이 펼쳐집니다.‘옛날 옛적에’로 시작하는 베드타임 스토리가 ‘오늘 여기에’로 바뀌어 현실이 되는 어드벤처 코미디로 상상만으로도 매우 즐거운 영화입니다. 어린이들에게는 꿈과 상상의 날개를, 어른들에게는 잃어버린 동심과 추억을 되살려주는 판타지 영화입니다. 우리도 영화처럼 우리가 들려주는 베드타임 스토리가 현실로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조금 엉뚱한 생각으로 오늘 하루를 이야기로 열어보고자 합니다.
인간이 태어나 무지에서 인식으로 나아가는 길은 문자나 숫자가 아니라 이야기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옛날 옛날에(once upon a time; long long ago)'로 시작하는 이야기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울 적에..."로 시작하는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있었고, 동네 나무 그늘 아래나 평상에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지금의 동영상이나 플래시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때는 재미만이 아니라 그 속에 정서와 어른들의 사랑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슬며시 TV가 자리잡기 시작하더니, 흐르는 세월과 함께 TV는 그럴듯하게 진화되어 가족간에 오가야 할 정과 대화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며 이야기는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있다고 하면 이야기라기보다는 야하고 저질스럽고 억지로 웃기는 이야기일 뿐 그 속에는 사랑과 정서와 추억 그리고 생명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처럼 어른들이 직접 겪고 들은 살아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만들어진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인지 어느 미래학자는 21세기는 다시 사람냄새가 구수하게 나는 구전시대로 돌아가는 스토리 텔링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것은 스토리(story이야기)+ 텔링(telling말하기)의 합성어로서 상대방에게 알리고자 하는 바를 재미있고 생생한 이야기로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동안 산업사회를 지나 후기산업사회를 거치면서 삭막해진 하이테크시대를 보완해줄 휴먼터치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이야기하기'라는 것입니다. 또 코펜하겐 미래학 연구소는 21세기의 사회는 '드림 소사이어티'(Dream Society)가 될 것이라고 보고서를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신화와 꿈 그리고 이야기를 바탕으로 시장을 형성하게 되는 새로운 사회를 말합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시장과 사회를 주도하려거든 이야기꾼(storyteller)이 되라고 합니다. 그만큼 미래사회는 '이야기하기'에 달려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이야기를 찾아야 합니다. 이야기를 회복하는 것은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사회가 사는 길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위기를 극복하고, 지루한 일상에 균형을 잡아주면서 인간에 대한 애정과 삶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한 시대의 반영인 동시에 공동체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근거가 됩니다만 무엇보다 이야기의 힘은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주는데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은 이야기가 우리 마음의 앞문이 잠겼을 때 뒷문을 열어준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인간의 행동으로 표현하는 것이 드라마이고 기록으로 남겨두면 역사가 됩니다. 누군가가 우리의 삶에 대해 묻는다면 우리는 지난날의 삶의 아픔과 기쁨에 대해, 현재의 느낌과 감정에 대해, 그리고 미래에 이루고 싶은 꿈과 희망에 대해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그 안에 우리가 살아온 삶의 흔적과 우리의 역사가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들의 삶에는 언제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말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병들게 되고, 삶의 목적과 의미를 상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야기가 있어야 합니다. 별이 빛나는 따뜻한 밤에 고귀한 영혼의 말씀을 부모를 통해서 전해 듣는 아이들은 정녕 행복합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의 자서전을 보면 그녀들의 오늘이 있게 된 데는 어려서 어머니들이 자기 전에 침대 곁에서 책을 읽어 주었기 때문이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서양의 어린아이들은 잠들기 전 침대 머리에서 '베드타임 스토리(Bedtime Story)'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그리고 어려서 부모가 읽어주거나 들려준 이야기들은 그들이 살아가는 평생동안 뇌리에 남아 영혼의 양식이 됩니다. 오래 전부터 서양 사람들의 가정에서 자기 전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습관은 참으로 너무나 부럽고 훌륭한, 흉내 내고 싶은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 누운 아이들의 곁에서 두런두런 책을 읽어주는 부모는 진정 아름다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따뜻한 침낭이 되어 아이들의 가슴을 덮어주고, 이야기는 날개를 달고 훨훨 날아올라 아이들을 아름다운 꿈나라로 인도할 것입니다. 그런 꿈을 매일 매일 이슬처럼 먹고 자란 아이들은 커다란 나무로 자라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맑은 마음으로 잠든 아이들의 꿈은 맑고 청아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은 세계 인구의 0.3%, 우리나라 인구의 1/3수준이지만, 정치, 경제, 과학, 예술 등 분야별 엘리트의 10%, 노벨상 수상자의 25%를 차지하는 뛰어난 민족입니다. 이러한 유대인의 저력은 다름 아닌 ‘이야기 교육’에 있습니다. 그들은 잠자리에서만 아니라, 앉았을 때도, 길을 갈 때도, 일어날 때도 이어졌으며 심지어는 미간에 붙이고 손목에 매어 다니기 조차 하였습니다. 그래서 박해와 수난의 5천년 역사 속에서도 지식과 지혜만은 결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구약의 라합이란 여인은 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노예로 있던 한 민족이 홍해를 가르고 나와 척박한 광야에서 40년 동안 살아남았다는 상천하지(上天下地)의 하나님 이야기였습니다. 이 이야기에 기반을 둔 믿음으로 라합은 무너지는 여리고 성에서 살아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그의 아들 보아스에게 베드타임 스토리로 들려졌고, 보아스는 어머니 라합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을 자신의 삶의 내용으로 채워갑니다. 이 이야기는 보아스 대에서 끝나지 않고, 그 집안의 베드타임 스토리가 되어 다윗에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신약에도 이야기를 가진 가문이 있습니다. 디모데에게는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전해진 성경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할머니 어머니의 베드타임 스토리에서 디모데가 자랐습니다. 모든 이야기에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로마인이고, 한국인 이야기의 주인공은 한국인입니다. 그러나 라합이 듣게 된 이야기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었습니다. 로이스와 유니게가 디모데에게 전한 이야기의 주인공 역시 하나님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은 인류 역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의 주인공이 되었고 또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야기하기'는 지식이나 대화가 아닙니다. 찬송가 199장처럼 "어머님의 무릎 위에 앉아서 재미있게 듣던 말" "지금도 내가 잊지 않고 기억하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맞습니다. 이야기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랑을 담는 그릇인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하이터치입니다. 우리는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특히 기독교학교의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이 말은 우리는 단지 지식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의 마음과 영혼을 어루만지는 사람이고,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이야기하는 사람이란 말입니다. 가정에서는 자녀들에게 베드타임스토리 즉 침대머리 교육이나 밥상머리 교육 등을 통해 가정교육은 물론 정체성을 회복하고 가문을 이어가는 베이스캠프를 형성하고 이야기를 통해 가족 모두의 꿈을 공유합니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베드타임스토리가 아닌 레슨타임(Lesson time - lesson은 수업, 교실, 강의, 교훈,수업하다 외에 성서일과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학과 수업시간에 이뤄지는 이야기와 경험은 물론 성서일과를 통해 이루어지는 신앙교육도 포함한다.)스토리가 되겠지만 교실(학교)에서 이뤄지는 일체의 행동에 이야기가 살아있는 교육이 된다면 명문가를 길러내는 명문학교가 될 것입니다.
이야기가 있는 가정과 교실이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야기가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계획과 사랑을 들려줍니다. 어둠과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합니다. 내일을 이야기하는 미래가 있습니다. 자녀만이 아니라 서로를 섬기는 사랑과 축복이 있습니다. 뜨거운 열정과 가슴, 안타까운 눈물과 영혼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잠자리에서만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서 이야기가 살아납니다. 저마다의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천국을 경험하는 현장입니다. 바라기는 우리의 가정과 학교에 이런 이야기 꽃이 피어나 추억을 심어주고 꿈과 비전을 키워갔으면 좋겠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들의 이야기가 우리만이 아니라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계속 이어져 가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이야기 살아나면 어느 날 영화 [베드타임스토리]에서 처럼 우리들의 베드타임 스토리는 물론 우리의 레슨타임스토리로 이루어진 우리의 꿈과 비전 역시 영화가 아닌 현실로 나타날 것이 분명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10년 6월 14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