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感)나무를 심읍시다 (마태7:18-20) 587장
생각만 해도 풍성한 추수감사의 계절입니다. 이맘때가 되면 청 보랏빛 하늘에 주황색으로 점점이 수를 놓는 예쁜 나무가 있습니다.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붉은 잎새를 떨구며 앙상한 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주홍빛 감나무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바쁜 도심의 일상을 포근하게 감싸줍니다. 감나무를 바라보면 학창시절 선생님의 유난스러웠던 감나무 예찬이 새록새록 기억납니다. 감나무는 잎이 넓어 글씨 공부를 할 수 있으니 문(文), 목재가 단단해서 화살촉을 깎으니 무(武), 겉과 속이 한결같이 붉으니 충(忠), 치아가 없는 노인도 즐겨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니 효(孝), 서리를 이기고 오래도록 매달려 있는 나무이니 절(節)이라 했습니다. 또한 목재가 검고(黑), 잎이 푸르며(靑), 꽃이 노랗고(黃), 열매가 붉으며(紅), 곶감이 희다(白)고 하여 오색오행(五色 五行), 오덕오방(五德五方)을 모두 갖춘 예절지수(禮絶之樹)로 아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감나무에는 일곱가지 덕이 있는데, 첫째 수명이 길고, 둘째 그늘이 짙으며, 셋째 새가 둥지를 틀지 않고, 넷째 벌레가 생기지 않으며, 다섯째 가을에 단풍이 아름답고, 여섯째 열매가 맛있고, 일곱째 낙엽은 훌륭한 거름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조금은 과장된 듯하지만 한마디로 버릴 것 없는 좋은 나무라는 뜻이겠지요. 그 말씀을 떠올리며 감나무를 보니, 따가운 햇살과 거친 비바람을 견뎌 빛깔 좋은 열매를 맺은 것만으로도 대견해 보입니다. 그 마음에 공들인 만큼, 좋은 나무에는 좋은 열매가 있음을 자연이 다시금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밥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감격과 감동을 먹고 삽니다. 오히려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은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됩니다. 그러나 워낙 빠르게 변하는 사회 속에 살다보니 어지간한 일로 감동하는 법이 없습니다. 이제 사람을 감동시키자면 많은 비용이 들고, 문학적 표현조차 격렬한 표현 방법을 쓰지 않으면 아예 읽지도 읽히지도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감동은 메마른 우리 뇌에, 마음에, 몸에 촉촉한 자양분이 되어 줍니다. 감동의 순간을 생각하면 무엇보다 기분이 좋습니다. 감을 갖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찾는 것입니다. 바쁜 일과 속에서도 푸른 하늘을 쳐다보고, 흩날리는 단풍과 낙엽을 주우며 깊은 생각에 잠겨보기도 하고, 단풍으로 물든 오솔길을 걸으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때론 지나간 일들 속에서 가슴이 찡하고, 뭉클하고 감동되었던 순간들을 잠시 꺼내어 보는 것입니다. 처음 만나 사랑을 고백했던 그날, 가슴 터지라 외치고 싶었던 그 날이 또 다시 다가온다는 믿음을 가져보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면 나를 위한 감동을 찾는 것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일은 더욱 아름답고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예컨대 친구들이나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며 그들의 언어와 사랑으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신나고 박장대소하는 일은 아니라 해도 혼자서 슬며시 웃음짓게 하는 작은 감동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작은 일에도 감격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은 감동의 물결을 일으키게 되고, 우리 사회는 용서와 화해가 넘쳐나는 행복한 공동체가 되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득 우리 마음 밭에도 感나무 한 그루 심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우리가 심었으면 하는 감나무는 바로 이런 感나무입니다. 가진 것도 없고, 이뤄낸 것도 없지만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심에 감동(感動), 여전히 주 뜻대로 사는 일에 실패하지만 끝까지 나의 하나님 되심을 기뻐하며 감격(感激), 계속해서 나의 하나님 되시어 보호하고 보살펴주심에 감사(感謝)가 열리는 나무를 심고 싶습니다. 뿐만 아니라 감화(感化),감명(感銘), 감흥(感興), 共感(공감), 感歎(감탄) 같은 열매들이 주렁주렁 열리는 나무 말입니다. 그런데 이 감(感)나무는 다른 나무와 달리 몇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감(感)나무는 심는 계절이 따로 없습니다. 또한 식목(植木)을 위해서는 땅, 즉 토질이 중요하지만 어떤 땅과 조건에서도 심기만 하면 큰 수고나 기술 그리고 물질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지금이 감(感)나무를 심을 적당하고 좋은 기회입니다. 하지만 感나무는 홀로 크지 않습니다. 때에 따라 거름도 주고 물도 주어야 하는데, 그 첫 시작은 감사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때 넘쳐오는 감동과 감격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시기라고 할지라도 感나무가 튼튼하고 강하게 자라도록 조금만 우리의 정성과 사랑을 거름으로 심고 보살핀다면 자신은 물론 모든 사람이 감격하고 감동할 만한 건강하고 아름다운 감(感)나무로 성장할 것입니다.
많은 과실나무 중 감나무를 좋아하고 감나무를 심자고 하는 것은 어릴 적 감꽃으로 만든 목걸이나 감잎 책갈피의 추억 때문입니다. 풍성하고 탐스러운 열매로 배부른 때문이기도 합니다. 삭막한 바람이 불어오는 추운 겨울까지 까치밥으로 남아 있는 넉넉하고 정겨운 모습 때문이기도 합니다. 눈보라 몰아치는 한 겨울에도 빈몸뚱이 부끄러워 아니하고 두 팔 벌려 하늘향해 기도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렇게 추운겨울을 이겨내고 새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피어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감나무를 보면 感나무가 생각나는 까닭입니다. 感나무에 맺혀있는 感열매를 세어 보며 주님께 받은 복을 헤아려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 이런 노래가 유행했습니다. “종로에는 사과나무를 심어보자, 그 속에서 꿈을 꾸며 걸어가리라, 을지로에는 감나무를 심어보자, 감이 익을 무렵 사랑도 익어 가리라”그렇습니다. 감나무는 그냥 나무가 아니라 우리에게 꿈을 주고 사랑을 익어가게 하는 나무입니다. 바라기는 정명동산의 모든 가족들이 저마다 감나무를 심어 감나무 풍성한 감밭 공동체가 되어져 푸른 꿈이 넘쳐흐르고, 감나무에 감 익어가듯 사랑도 익어가길 소망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9년 11월 2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