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광야체험

물음표와 느낌표 2009. 5. 25. 17:08

광야체험 (신8:2-3) 400장

 

  늘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신다고 하면서 왜, 수많은 어려움과 고통의 순간들을 통과하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과연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복 주신다고 말씀하시면서 험난한 광야로 가게 할까요? 광야는 고독한 곳입니다. 조용한 곳입니다. 광야에는 사람들이 없습니다. 필요한 것들이 없습니다. 광야는 홀로 머무는 곳입니다.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토록 적막하고 험한 광야가 필요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광야를 통해 가나안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지 그렇지 않은지 시험하시기 위해서입니다(신8:2). 둘째,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은 세상의 법도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어야 함을 훈련시키시기 위함입니다(신8:3). 셋째는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신8:16). 만약 이스라엘 민족이 이 시험에 합격했다면 그들은 빠른 시일에 광야라는 과정을 통과해 가나안에 도착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이 그 시험을 통과하는 데는 40년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광야는 시험과 훈련의 장소입니다. 믿음을 확인하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확인하기 위해서 그들을 낮은 자리로, 고통의 자리로 이끌어 가십니다. 왜냐하면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광야'라는 히브리말의 어원과 '말씀'이라는 히브리말의 어원이 같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말씀하십니다. 세례 요한이 광야, 즉 빈들에 있을 때 하나님이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소망의 자리에 이르게 하기 전에 '광야'라는 시험과 훈련의 단계를 거치게 하십니다. 의로운 자가 고난을 당하거나, 신실한 믿음이 시련을 겪는 것이 바로 그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광야를 피해서 가나안으로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과정을 통해 사람을 세웁니다. 특별히 하나님이 지도자로 세운 사람들에게 광야체험은 필수입니다. 야곱도 홀로 광야에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요셉도 홀로 구덩이에서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모세도 광야에서 양을 치며 무려 40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를 앞두고 광야에서 40일을 지냈습니다. 세례 요한에게도 광야생활이 있습니다. 바울도 회심한 후에 아라비아에서 보낸 시간들이 있습니다. 광야, 그곳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누군가 말하길 '광야는 하나님이 극대화되고 사람이 극소화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도시생활은 사람이 커지고 하나님이 작아집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아도, 하나님만을 의지하지 않아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살만합니다. 도시에는 사람들이 만든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습니다. 그것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면 됩니다. 사람을 나의 도움으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치하고 하나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광야에는 없습니다. 광야에 가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라는 고백이 절로 나옵니다. 광야에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오직 한 분만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을 의지하고 신뢰하려고 해도 할 것이 없습니다. 자신의 의지나 선택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광야생활 40년을 통해 모세가 배운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났을 때 모세가 한 말은 '난 못합니다'였습니다. 그곳이 광야입니다. 광야는 인간의 힘이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는 좌절과 체념의 시기입니다. 우리가 광야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뿐입니다.

 

 

  '나는 할 수 없다'란 사실을 알게 될 때, 그 사실을 깨닫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일 하십니다. 그러기에 내가 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체험을 통해 이런 고백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아무리 크고 위대한 일이 이루어진다 해도 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광야를 통해 철저하게 깨달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준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광야체험을 한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담대함입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면서 들려준 그 믿음의 고백들은 광야체험을 한 자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1년에 한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초막절을 지키라고 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광야체험을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게 합니다. 살다보면 하나님을 잊고, 사람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기도 하면서 삶이 얽히고 맙니다. 이렇게 엉클어진 것을 다시 푸는 곳이 광야입니다. 광야에 가면 이 엉클어진 것이 풀립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광야의 체험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본인이 원해서 가기도 하고 강제로 보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주기적으로 광야생활을 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광야는 아무 말도 없습니다. 여기는 어떤 표지판도 안내판도 없습니다. 광야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으로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합니다.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상황은 하나님이 극대화 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광야체험은 하나님의 기적과 풍요로움을 경험하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우리는 도시에서 살면서도 여전히 광야에서 사는 것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의뢰할 만한 사람들이 많고, 의지할 만한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만 전적으로 의지하며 살길 원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9년 5월 25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