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타인(고전4:15-16) 452장
인간의 자아개념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을 '중요한 타인'이라고 합니다. 중요한 타인(significant others)이란 한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나 삶의 가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람을 통칭하며, 사람에 따라 부모, 친구, 교사, 존경하는 인물, 애인, 배우자 등 중요한 타인이 되는 사람은 다양하지만 중요한 타인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가 형성됩니다. 특히 부모나 교사와 같이 특정한 사람의 가치나 태도 및 행동을 크게 모방하게 되는데, 이 때 모방의 위치에 있는 사람을 '중요한 타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타인의 첫 번째는 부모이고 그 다음은 교사이고 친구입니다. 그런데 교사에는 지식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있고,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가 있습니다. 지식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서는 지식만을 배우지만 덕으로 가르치는 교사에게서는 인생 그 자체를 배웁니다. 덕으로 가르치는 경우는 먹으면 먹는대로 곧 살이 되어 성장하고 성숙하게 하는 어머니의 젖과 같습니다.
독일의 어느 작은 마을에 피아니스트가 살았습니다. 그는 피아노 독주회를 준비하고 지방 신문에 광고를 내는데 당시에 유명한 음악가인 리스트의 제자라고 자기를 소개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습니다. 그는 리스트를 만나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연주회가 있기 몇 일전 리스트가 이 마을에 오게되었습니다. 큰일났습니다. 거짓이 탈로 나면 음악가로서의 자신의 일생은 끝장나고 마는 것입니다. 전전긍긍합니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이제는 다른 방법이 없었습니다. 리스트가 마을에 왔을 때 그는 100배의 용기를 내어서 리스트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빕니다. "제가 선생님의 이름을 도용했습니다. 제가 아직 부족함이 많은 피아니스트인 주제에 감히 당신의 제자라고 하였습니다. 저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말을 하자 리스트가 조용히 웃으면서 대답했습니다. "당신은 크게 잘못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부끄러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괴로워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제 일어나 내 앞에서 한번 연주를 해보시오" 리스트는 연주를 시켰습니다. 그는 벌벌 떨면서 리스트 앞에서 피아노를 칩니다. 리스트는 연주를 들으면서 중간중간 멈추게 하고 고쳐줍니다. 연주를 마치자 리스트가 그에게 말을 합니다. "단 한번이라도 내가 당신을 가르쳤으니 이제 당신은 분명히 내 제자입니다. 그리고 연주회에서 당신 연주가 끝나면 제가 한 곡을 연주하겠습니다. 관객들에게 그렇게 소개하십시오." 그 연주회는 엄청난 기쁨과 영광의 연주회가 되었습니다.
기독교교육을 가리켜 흔히 삼위일체 교육 혹은 삼박자 교육이라고 합니다. 그것은 교사가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부모님을 만나 함께 기도하고 의논하고, 가정생활, 학교생활, 교우관계 등을 포함하는 생활 전체를 지도하며 인생의 멘토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기도가 아니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육을 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선생님이나 부모가 당연히 화를 내야 할 때 화를 내지 않으면 그 아이들의 분별력이 사라지는 것처럼. 마땅히 울어야 할 때 울지 않으면 그들의 영혼도 메말라 버립니다. 그러기에 학교와 교회와 가정이 하나가 되어 교육을 펼쳐야 하고, 그것을 삼위일체교육이라 합니다. 사람의 품위는 꾸밈이나 가식에 있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평소의 삶 속에 녹아 있습니다. 교사라고 항상 고상할 수는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은 서로 접촉하면서 둘 다 같이 배우고 또 그래야 합니다. 진정한 교육은 중요한 타인 즉 부모와 교사와 친구가 서로 더불어 체험하고, 실험하고, 소화시키는 가운데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식을 잘 전수했다고 스승은 아닙니다. 더구나 오래 배웠다고 스승은 아닙니다. 교사는 짧은 순간일지라도 감동으로 가르치면 스승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책으로 내어 오래 간직하고자 하지만 가장 오래도록 남는 기록은 가슴에 감동으로 새겨진 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분명 아버지는 스승과 다릅니다. 무엇이 다를까요? 저는 이렇게 이해해 봅니다. 스승은 가르치긴 하지만 책임지지 않습니다. 스승은 가슴 아파하지만 함께 울어주지는 않습니다. 스승은 아이를 위해 염려하지만 밤새워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는 아이를 위해 자신을 기꺼이 내어줄 줄 압니다. 함께 고통을 나누어집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가운데 하나가 기도이듯, 우리가 아버지 같은 스승이 되어 우리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중요한 타인'이길 소망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9년 5월 11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