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동행을 꿈꾸며 (창5:21-24) 430장
우리의 인생 길을 순례자의 길, 여행길이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 어렵고 힘든 여행을 하는 동안에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필요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오랜 인생을 산 지혜로운 선배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입을 모아 여행길에는 동행자가 가장 필요하다고 합니다. 수고와 슬픈 일이 가득 찬 세월을 사는 날 동안에, 외롭고 고독하고 위험한 광야 같은 인생길이, 즐겁고 행복하고 살만한 인생 길로 될 수 있는 것은 좋은 동행자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래서일까요? 성경은 두 사람이 의합치 않고 어찌 한 길을 가겠느냐?(암3:3)고 합니다.
정신과 의사인 존 칼혼(Jhon calhoun)박사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한 바 있습니다. 쥐들이 살 수 있는 큰집을 지어놓았습니다. 약 160마리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넓은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곳에 단 8마리의 쥐를 넣어 길렀습니다. 2년6개월이 지나자 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약 2,200마리로 불어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많은 문제들이 나타났습니다. 공간이 너무 작아지자 서로 물고 할퀴고 싸움이 계속 벌어지고, 먹을 것을 넉넉하게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암컷과 수컷의 영역싸움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어미 쥐들과 새끼 쥐들이 서로 양분이 되어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몇년후 새끼 쥐부터 죽기 시작했습니다. 어미 쥐들은 생식기능을 잃어버려 5년 뒤에는 거의 모든 쥐들이 다 죽어버렸습니다. 서로 돌보고 섬기지 않으면 죽게 되는 이런 원칙이 어찌 쥐들의 세계에만 적용되는 것이겠습니까? 우리 사람들도 서로 돌보고 아끼고 섬기지 않고 빼앗고 다투고 짓누르면 서로가 상처를 입고 죽게 될 것입니다.
어떤 회사 입사시험 중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당신은 거센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길에 운전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버스 정류장을 지나치는데 그 곳에는 세 사람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어가고 있는 듯한 할머니, 당신의 생명을 구해 준 적이 있는 의사, 당신이 꿈에 그리던 이상형. 당신은 단 한 명만을 차에 태울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태우겠습니까? 선택하시고 설명을 하십시오." 여러분은 어떤 답을 하시겠습니까? 어떠한 답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당신은 죽어가는 할머니를 태워 그의 목숨을 우선 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의사를 태워 은혜를 갚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의사에게 보답하는 것은 나중에도 가능한데 비해 이 기회가 지나고 나면 이상형을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생각으로 이상형을 차에 태우고 가겠다는 솔직한 답변을 할 수도 있습니다. 200명의 경쟁자를 제치고 최종적으로 채용된 사람이 써낸 답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 차 열쇠를 드리죠.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셔다 드리도록 그리고 난 내 이상형과 함께 버스를 기다릴 겁니다. 이것이야말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동행이 아닐까요? 가끔씩 우리는 내가 아끼는 것을 포기함으로써 더 많은 것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틀을 깨고 생각하면 폭이 넓어지고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정말 세상을 살면서 아름다운 동행을 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면서 故 함석헌 선생이 남기신 “그 한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명시가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
만리 길 나서는 길 / 처자를 내 맡기며 마음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너 뿐이야 하고 믿어주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감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런 사람을 무엇이라고 묘사하면 좋겠습니까? 물론 함석헌 님에게 이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저는 그 사람을 '행복한 동행자'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남가주 대학에서 사랑학을 가르치던 레오 버스카글리아 교수의 책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할아버지 한 분이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계셔서 주변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 자체를 거부하고 계셨습니다. 상담자의 노력도 실효를 거두지 못했고 가족들의 노력도 별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같은 아파트에 사는 어린 소년이 할아버지를 만나고 와서는 할아버지의 병세는 급격하게 호전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린 소년에게 물었습니다. "너, 도대체 할아버지 만나서 무슨 일을 했니?" 소년의 대답은 뜻 밖에 "아무 일도 안 했어요. 그냥 할아버지를 붙들고 울었어요." 하더랍니다. 이웃들은 다시 물었습니다. "너, 어떻게 할아버지 붙들고 울 생각을 했니?" 소년은 다시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저는 친구거든요"
영국에서 이런 문제를 내고 답을 공모한 적이 있습니다. '맨체스터에서 런던까지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공모에 일반인들은 물론이고 수학자와 교통학자들까지 많은 사람이 응모했습니다. 비행기, 기차, 자동차, 오토바이로 이동하는 방법, 지도상에 지름길을 측정해서 이들 교통수단들을 적절하게 혼합하는 방법 등 답은 다양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1등을 한 사람의 답은 "좋은 친구와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빨리 가는 방법은 마음으로 가는 것입니다. 나머지 몸은 따라가면 그만입니다. '두 점 사이를 잇는 최단거리는 사랑이다'라는 말처럼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에녹의 동행이 그러합니다.
원용일 목사는 그의 책 [에녹과 함께한 동행]에서 에녹의 동행을 다음 8가지로 설명합니다. ① 이야기 나누는 동행 -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일상적이고 친밀한 대화가 하나님과의 동행에서 필수인 것처럼 사람들과도 이야기를 통해 동행 관계를 회복할 수 있습니다. ② 일상을 함께 하는 동행 - 특별한 사람, 특별한 날, 특별한 경험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 매일 반복하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영성이야말로 참된 영성입니다. ③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동행 - 하나님을 존경하고 "기분 좋게" 해드리는 제사장적 영성이 필요합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준행하며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영광스러운 특권입니다. 하나님을 기분 좋게 해드리는 것처럼 누군가를 기분 좋게 하는 것은 동행의 기본입니다. ④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동행 - 참된 영성은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것은 물론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증거이기도 합니다. ⑤ 가족에게 인정받는 동행 - 가족은 모든 부분에서 동행할 뿐만 아니라,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미쳐야 합니다. 그러기에 나의 신앙과 영성을 가족 모두가 인정하고 따를 수 있도록 가족을 돌봐야 합니다. ⑥ 일터에서 인정받는 동행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는 성경적 직업관에 근거한 직장생활을 통해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⑦ 세상에서 고독하게 싸우는 동행 - 고독의 영적인 유익과 아울러 아무도 보는 이가 없을 때 거룩할 수 있는 영성이 참된 영성입니다. ⑧ 종말의 때까지 대를 잇는 동행 - "내가, 내 시대에, 나 혼자 힘으로"라는 거룩한 교만을 벗어버리고, 자녀들이 계속해서 우리의 꿈과 비전을 이루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일은 바로 예수님과 함께 새 땅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아름다운 동행입니다. 동행의 약속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의 임마누엘이 그것을 입증해줍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사랑을 나누고 싶어하며 그것은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지만 행복한 동행은 하나님과의 관계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우리 모두는 동행의 즐거움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혼자가 아닌 '함께 살고' '더불어 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함께 나눔과 상생의 공동체 속에서 삶의 의미가 있고, 그게 행복한 삶을 사는 지혜인 까닭입니다. 이제 신학기가 시작되어 새로운 친구들이 우리의 가족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더디게, 팍팍하게 살아도 조급해하지 않고, 천천히 함께 가면서, 다양한 삶과 다양성을 인정하며, 너와 내가 그리고 우리가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아름다운 동행의 기쁨과 위로가 넘쳐나면 좋겠습니다. 여주동행(與主同行), 사제동행(師弟同行), 동료동행(同僚同行)의 행복한 동행을 꿈꾸어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9년 3월 2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