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는 교육 (로마5:3-6) 482장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하여 정말 편리해지고 좋아졌습니다. 하지만 희망을 잃고 아파하는 이웃들은 점점 더 늘어나, 절망과 좌절만이 가득한 그야말로 캄캄한 밤중에 사나운 풍랑까지 부는 듯 위태롭고 절박한 심정입니다. 마치 연어들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너무 벅차고 힘이 듭니다. 그럼에도 연어들이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희망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연어의 삶은 우리와 비슷합니다. 어떤 힘겨운 일 앞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겨내면 그 고통 뒤의 쾌락을 맛볼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그리고 희망을 찾아서 떠나는 연어들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도 희망을 찾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정호승 시인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 잠들고, 어둠 속에 갇혀서 꿈조차 잠이 들 때, 홀로 일어난 새벽을 두려워 말고, 별을 보고 걸어가는 사람이 되어, 희망을 만드는 사람이 되라"고 했는지 모릅니다. 며칠 전 한 TV프로그램에서 들은 이외수 님의 글입니다. "그대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고, 하늘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없는 처지라면, 그대의 인생 길은 당연히 비포장도로처럼 울퉁불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수많은 장애물을 만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의 장애물은 하나의 경험이며, 하나의 경험은 하나의 지혜다. 명심하라. 모든 성공은 언제나 장애물 뒤에서 그대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
그렇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삽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는 하루도 살아가기가 힘든 것이 인생입니다. 당장은 어렵고, 힘든 삶도 희망이 있으면 참고 견디며 살아갈 수 있으나 희망이 없으면 곧 절망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는 열등감이 찾아옵니다. 무력감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결국은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찾아야합니다. 영국의 시인 셀리의 말대로 "폭풍이 지난 들에도 꽃은 피고, 지진으로 무너진 땅에도 샘이 솟아오릅니다." 그처럼 생명은 절망을 뚫고 희망을 찾습니다. 생명(生命)은 말 그대로 살라(生)는 명령(命)입니다. 그런데 진정 생명을 살리는 것은 희망입니다. 삶에 희망이 출렁일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희미한 촛불 하나가 온 세상의 어둠을 물리치듯 비록 아주 작은 희망일지라도 그 희망만이 혹독한 절망에 맞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고전13:13)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희망'을 찾고 만들어야 합니다. 가슴에 희망을 품은 사람이 살아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눈물 많고 어지러운 세상 중에서도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기쁨으로 살아야 하는 것은 바로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조지 프레드릭 왓츠라는 화가가 그린 '희망'이란 그림이 있습니다. 둥근 지구 위에 슬픈 듯이 고개를 숙이고 하프를 연주하는 한 여인의 모습이 있고, 뒤에는 불빛 하나가 빛나고 있는데, 가만히 보면 하프의 줄이 다 끊어져 버리고 이 여인은 한 가닥 남은 하프 줄을 가지고 음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그림의 제목을 희망이라고 했습니다. 47개의 하프의 줄이 살면서 하나 둘 끊겨져가더니 결국 마지막 남은 한 줄에 희망을 걸고 음악을 켜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지만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입니다. 물질을 잃었다면 몸으로 할 일이 있습니다. 건강을 잃었다면 또 다른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 다른 문을 열어주십니다. 문제는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찾는 일입니다. 빌헬미라는 음악가가 바흐의 관현악 곡을 편곡하여 'G선상의 아리아'라는 이름을 부쳐, 이를 바이올린의 G선만으로 연주하도록 한 것처럼 얼마든지 한 가닥의 줄로도 감동을 주는 작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줄 하나에서 아름다운 곡조를 기대한다는 것은 희망이며 용기입니다.
특히 기독교인은 상황에 반응하는 사람이 아니라, 약속에 반응하는 사람입니다. 약속에 반응하는 사람은 어떤 형편에서든지 희망을 찾습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여호수아처럼 보물섬의 작가 스티븐슨이 그랬고, 메시아를 작곡한 헨델이 그러했고, 신곡을 남긴 단테가 그랬고, 죄와 벌을 남긴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랬습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망가진 하프의 하나의 줄에 소망을 가진 것처럼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으로 희망을 찾아 위대한 삶을 엮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꿈과 희망은 사람의 영혼을 높게 끌어 올려주는 영혼의 날개와 같습니다. 그 꿈과 희망이 있으면 오늘의 어려움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게 가장 비극적인 일은 꿈과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이유를 대고, 어떤 변명을 해도 결코 꿈과 희망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꿈과 희망은 축복의 씨앗이고, 행복의 설계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할 일이 분명해졌습니다. 그것은 바로 희망을 찾는 일입니다.
오 헨리의 작품 [마지막 잎새]에 나오는 이야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한 소녀가 폐렴을 앓고 있었는데, 그녀에게 폐렴보다 큰 문제는 의지를 잃어버린 감상주의였습니다. 이 소녀는 병상에서 보이는 담쟁이 넝쿨을 바라보면서 그 넝쿨의 잎이 마지막으로 떨어지면 자신의 생명도 끝난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넝쿨의 마지막 한 잎새가 남았던 그 날 밤은 유난히 비바람이 심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마지막 잎새의 흔적을 보려고 커튼을 젖혀달라 했는데 놀랍게도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지 않고 아침햇살에 더 환하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다음날도, 그리고 그 다음날도 마지막 잎새가 붙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원래 그 마지막 잎새는 이미 떨어졌는데, 그 집 1층에 사는 그렇다 할 작품 하나 그리지 못한 노(老)화가 베어먼 할아버지가 그 담장에 마지막 잎새를 그려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그려진 담쟁이 넝쿨의 마지막 잎새 하나가 결국 그 소녀를 병에서 일으켰습니다. 우리는 아이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의사나 마지막 잎새를 떨어지지 않게 할 식물학자는 될 수 없겠지만 분명 우리에게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화가처럼 희망을 그려 넣는 일입니다.
희망보다 더 크고 강력한 리더십은 없습니다. 야구선수인 아들을 둔 아버지에게 어느 기자가 경기를 매번 지는데도 왜 구경하러 오시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아버지는 활기찬 눈빛으로 이렇게 대답합니다. '언제나 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가수 변진섭의 희망사항과 현재명의 희망의 나라를 노래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 눈에 눈물이 흐르고 있다면 그것은 희망입니다. 그 눈물로 가난과 슬픔으로 지친 이들의 아픔을 씻어 낼 수 있으니까요."라는 시 구절처럼 오늘도 가슴속에서 꿈틀거림이 있다면 희망입니다. 날이 어두워지면 자연스럽게 불을 켜듯이 우리들도 얼른 불을 밝히고 가까운 곳의 희망부터 하나하나 찾아내면 좋겠습니다. 우리 각자의 희망을 찾는 일도 중요하지만 우리 아이들과 이웃들에게도 희망을 찾아주어야 합니다. 결코 어렵고 힘든 일이 아닙니다. 상처받고 힘들어하는 친구와 이웃에게 문자나 전화하기, 격려해주기, 이야기해주기, 때로는 손을 잡아주고, 쓰다듬어주거나, 함께 놀아주거나, 같이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희망을 찾아내고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어떠한 어려움도 희망으로 경영할 수 있습니다. 희망의 하나님이 우리가 처한 절망의 현장으로 끊임없이 찾아와 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희망으로 우리 인생을 경영할 때 우리는 결국 마른 골짜기에 우물을 만들고, 그 곳에 단비를 저장시키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때로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마침내 참 희망을 낳게 됩니다. 운전자들은 바라보는 곳, 즉 생각하는 방향으로 차가 움직인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원하는 방향만 바라보면 자연스럽게 차가 그 방향으로 움직이도록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을 어떻게 하느냐가 아니라 원하는 곳을 바라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방법은 그 다음입니다. 한 방향을 향해 바라보면 됩니다. 긍정의 힘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희망을 이야기하고,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희망이 사람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듭니다. 지금 공부를 잘하는 사람보다 앞으로 공부를 더 잘 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노력하는 사람이 더 아름답습니다. 현재 돈을 많이 가진 사람보다 앞으로 돈을 많이 벌고 선한 일에 많이 쓰겠다는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땀흘리는 사람이 더 행복한 사람입니다. 내일이란 미래는 빈들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기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 빈들에 희망을 심어야 합니다. 이 어려운 시절에 촛불만이 희망은 아닙니다. 빈들에 무엇을 심느냐 하는 것은 순전히 우리들 각자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에게 남은 희망의 줄은 무엇입니까?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8년 6월 23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