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롭게, 정직하게(잠언1:1-7) 454장
예루살렘 성전이 주후 70년 5월 9일 로마 장군 베스파시안(Vespasianus, 9~79년)에 의해 함락될 때의 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되기 전 유대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는 성을 탈출하여 베스파시안 장군을 찾아갔습니다. 적장을 만난 랍비 자카이가 말했습니다. "저가 목숨을 걸고 성을 탈출하여 장군을 찾아온 것은 한 가지 청이 있어서입니다. 이제 당신네 군대가 조만간 성을 함락하여 인명을 살상하고 성을 파괴하겠지요. 우리는 당연히 그렇게 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가 장군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할지라도 야브네([Jabneh) 마을에 있는 교실 하나만큼은 허물지 말아 주십시오." 이에 장군이 "왜, 하필이면 그곳만은 파괴치 말라고 부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랍비가 답하기를 "나라가 무너지고 성전까지 허물어질지라도 후손들을 교육시킬 교실 하나만큼은 남아 있어야 민족의 혼을 깨우치고 신앙을 이어가는 교육이 이루어지지 않겠습니까?" 장군은 그 말을 가상히 여겨 약속을 지켜 주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폐허 위에서 그 교실에서 2세 교육을 다시 시작하여 나라 없는 처지에서도 민족정신과 신앙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자녀교육을 일으켜 세계적으로 우수한 민족을 이루어 낼 수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중요한 것은 교육입니다.
교육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하나는 표면적기능으로 의도한 바에 따라 교과 즉 지식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잠재적 기능으로 언어나 문자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학교 행사, 문화 풍토, 교사의 묵시적 영향 등에 의하여 배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시간 지키는 일, 질서 지키는 일, 서로 협력하는 일, 남을 배려하는 마음, 자신감을 갖는 일 등을 배우게 됩니다. 그냥 교육이 아니라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행하도록 혼을 깨우치고 받들 줄 알게 하는 교육입니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임익의 [니가 수학을 못하는 진짜 이유]라는 책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소주병의 부피를 구하라는 문제를 냈는데, 그것을 푸는 방법은? ① 평범한 풀이: 물을 가득 채운 후, 메스 실린더에 따라 붓고 부피를 구한다. ② 수학 잘하는 놈의 풀이: 소주병 외부 라인의 함수를 구한 후 적분한다. ③ 머리 좋은 놈의 풀이: 소주 회사에 전화를 한다. ④ 진짜 머리 좋은 놈의 풀이: 소주 상표 라벨을 읽어본다. 비록 우스개 소리이지만, 이를 볼 때 똑같은 문제라도 그것을 푸는 방법은 가지가지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어느 방법도 틀렸다고 할 수는 없는데 우리는 학교에서 두 번째 방법만 배우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공부 잘한 사람이 융통성이 없고, 사회 생활에서 적응이 어려워지는 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두 번째 방법을 배웠고 또 그렇게 가르칩니다. 그것은 가장 힘들어도 그게 근본적인 방법이며, 기본을 배우고 익혀야 그것을 응용하여 많은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교육이 지식적 근본만을 가르치는 데에서 끝난다는 것입니다. 이 책에서는 세 번째, 네 번째 방법이 머리 좋은 놈의 풀이라고 하면서도, 사실은 '잔머리 굴리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 모두가 소주병의 부피를 구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굳이 필요하다면 소주병의 부피를 구하는 문제는 소주 회사에 한 명, 그리고, 그것이 정확한 것인지를 감시하거나 감독할 사람 한 명이면 족합니다. 오히려 많은 경우 경험으로 알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소주는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마시면 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전 국민들이 마치 소주병의 부피를 두 번째 방법으로만 풀이하도록 강요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결과 '우리 시대의 패러독스'라는 글에서 밥 무어헤드는 우리 시대의 삶을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집은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학력은 높아졌지만 상식은 부족하고,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모자란다. 전문가들은 늘어났지만 문제는 더 많아졌고,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가진 것은 늘어났지만 가치는 더 줄어들었고, 말은 많이 하지만 사랑보다 오히려 증오를 쉽게 표현한다. 생활비를 잘 버는 법은 배웠지만 진정하게 잘 사는 방법은 모르고, 수명은 늘어났지만 삶의 의미를 증대시키는 방법은 잊어버렸다. 달까지는 쉽게 왕복하고 있지만 길 건너 새 이웃을 방문하는 일에는 더 인색해졌다. 우리가 외계를 정복했는지 모르지만 마음속의 평정은 잃어버렸고, 공기는 정화시킬 수 있게 됐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었고, 원자는 정복하였지만 스스로의 편견은 극복하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공부를 잘한다고 학생들의 사고 능력이나 창의력, 그리고 응용력이 뛰어난 것이 아니며, 더욱이 교육수준이 교양수준이나 생활 수준 나아가 행복수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생활에 필요한 것은 교과서적 지식이 아니라 협력과 믿음과 사랑입니다. 지금 엄마나 아빠들 중에서 초등학교 5,6학년 학생들의 교과서를 보고 아이들을 집에서 지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그렇지만, 엄마 아빠는 잘 살고 있습니다. 결국 불필요한 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기에 수학을 잘하는 학생에게는 수학을, 그것이 지루하고 재미없는 학생에게는 오히려 사회 생활에서 믿음을 심어 주는 교육이 더욱 필요할 것입니다. 학생들 개개인이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 것을 잘 하도록 도와주고, 서로 믿고, 서로 협력하고, 서로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지혜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행복 방정식은 성적이나 지식으로 푸는 것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으로 풀 수 있는 까닭입니다.
하늘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거목은 뿌리가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중한 아이들이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뿌리처럼 묵묵히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우리들의 관심과 교육이 중요합니다. 그냥 교육이 아니라 두 팔 벌려 기도하는 나무처럼 신앙을 바탕으로 하는 인격과 소양을 키우는 교육이며, 혼을 깨우치고 영혼을 살리는 교육입니다. 그것만이 우리 아이들을 지혜롭게, 공의롭게, 정의롭게, 정직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8년 5월 26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