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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필요합니다

물음표와 느낌표 2008. 5. 19. 11:35

어른이 필요합니다 (신32:7) 218장

 

  언제부터인가 우리에게서 어른이 사라졌습니다. 나이가 많은 연장자는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존경하고 의지할 만한 어른들은 많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모두 어른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는 어른이라는 칭호를 받지 못합니다. 나이는 먹었으되 생각이나 행동이 어른답지 못한 어른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어른들은 존경을 받아야 합니다. 어른들이 존경을 받기 위해서는 어른다워야 합니다. 어른답다는 것은 본이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본이 된다는 말은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정도는 바른 길을 말합니다. 바른 길은 곧게 뻗어 있습니다. 곧음은 절개를 말합니다. 절개는 불의와 타협하지 않습니다. 어른은 잘못된 것을 보고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젊은이들의 잘못된 모습을 보고 혀를 차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야단을 치는 어른들을 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스스로가 어른이기를 포기한 나이 든 사람들입니다.

 

 

  우리 사회, 특히 학교 교육의 대부분의 문제는 바로 이러한 어른들이 없다는 데에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언젠가 미국의 교육은 '남을 돕고 살아라', 일본의 교육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말고 살아라', 우리교육은 '누구에게도 지지말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로 대변할 수 있다는 이야길 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동감하십니까? 요즘의 우리 아이들을 보면 이것이 현실인 것 같아 무척 마음이 아프고 쓰립니다. 남보다 앞서기 위해 학원에서 배운 선수 학습으로 인해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엎드려 자거나, 수업에 열중하는 학생들을 왕따 시키는 버릇없고 예의없는 아이들이지만, 이미 권위를 상실한 지 오래된 교사의 위상으로는 이들의 생활지도가 쉽지 않은 것이 오늘 우리의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그 엄했던 선배들도 사라졌습니다. 부모님의 권위도 서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다만 자신에게 유익을 줄 사람에게는 최고의 경의를 표하지만, 별 볼일 없는 사람에게는 무례하고 거만하게 행동하거나, 약하고 순하게 보이는 사람은 무시하고, 강하고 까다롭게 보이는 사람에게만 예의를 지킵니다. 즉 이해 관계에 따라 변하는 위선적 예의만 있을 뿐입니다. 이런 사람은 간사한 사람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모두가 "기죽이지 말라"고 합창하며, 스스로 어른이기를 포기한 연유입니다. 기죽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바르게 가르쳐야 할 의무가 우리 교육자들에게 있습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어른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학생의 비행이나 잘못된 행동을 보고, 모른 체 방관하는 교사는 선생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아이들에게 지식을 전달해 주는 셀러리맨이지 교육자는 아닙니다. 스스로가 스승이기를 포기한 사람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어른이기를 포기하고 살아가는 나이든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슬픈 현상입니다. 식당에서 마구 뛰어 다니며 장난을 치는 자녀들을 야단치는 부모가 많지 않습니다. 복도에서 큰소리로 떠들며 떼를 지어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을 야단치는 교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야단을 맞지 않는 아이들은 자기들의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성장해 갑니다.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정도를 걸어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입니다. 연세가 많은 분들이 왜 어른이기를 포기하고 살아갑니까? 그것은 그 일이 귀찮고, 있는 자리에 안주하고 싶어서입니다. 때로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른들은 때로는 하기 싫고, 귀찮은 일들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들을 키울 때 마다하지 않았던 어려움을 가끔은 감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때로는 길을 막고 서서 "여기는 절대로 넘어갈 수 없다"고 호령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래도 흥, 저래도 흥'하며 흥타령에 젖어 있는 사람들은 어른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김교신,  함석헌 선생님이나 문익환 목사님이 존경받는 것은 본인에게 닥칠지도 모르는 위험을 감수했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은 그런 기개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어른은 이 사회의 신호등과 같습니다. '하면 안돼, 스톱, 멈춰'라고 금하는 빨간색, 조심하라는 노란색 그리고 '이렇게 하라'는 녹색으로 삶의 모델이 되어야 하고, 때로는 화살표가 되어 삶의 좌표와 방향을 가리킬 수 있는 사람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비에게 묻고 어른들에게 물으라고 한 것은 삶의 지혜가 바로 이런 어른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의 많은 곳들에 어른들이 계셔야 합니다. 지도자에게 직언할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합니다. 신임 사원에게 본이 되고 따끔하게 충고해줄 수 있는 중견 사원이 필요합니다. 격려해 주는 어른도 있어야 합니다. 칭찬해 주는 어른도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진정 필요한 어른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어른입니다. 귀찮다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대우받을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존경받을 생각도 말아야 합니다. 나이든 어른으로 대우받고 존경받기 위해서는 어른의 역할을 다해야 합니다. 자기희생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국가의 정책이 잘못되었을 때에, 사회의 구조가 뒤틀려져 있을 때에, 교회나 학교의 모습이 바람직하지 못할 때에, 단호한 목소리로 "아니오!"라고 말해야 합니다. "아니오"라고 말해야 할 때, "아니오"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필요하면 회초리를 들어야 합니다. 회초리를 들지 못하면 스스로가 어른이기를 포기한 것입니다. 우리 가르치는 교사는 먼저 아이들에게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8년 5월 20일 교직원예배:윤삼열목사-이 글은 박철목사의 글을 참조하여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