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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들판을 보았느냐

물음표와 느낌표 2007. 11. 12. 18:48

시136:5-9 가을 들판을 보았느냐 310장

 

  달력이 달랑 두 장 밖에는 남지 않은 11월은 가을과 겨울을 연결하는 징검다리 달입니다. 그러기에 징검다리 건너듯 조심스럽게 건너야 할 것입니다. 때론 쓸쓸함마저 애틋하게 품어야 하고, 저물녘 울컥 가슴 미어지도록 쏟아지는 서러움도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서 이럴 땐 선홍색 단풍잎이 카펫처럼 깔려있는 밖으로 나가, 곱고 부드러워 자꾸 만져보고 싶었던 가을의 속살을 어루만지며 흩어졌던 마음조각들을 추슬러 봅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아니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생의 절정에 서는 나무처럼 무거워진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황홀한 빛깔로 물들어 가길 조용히 기도합니다.  

 

 

 “빛이 하얗게 쏟아지는/ 가을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가 보았느냐/ 세상은 잠이 들고/ 지푸라기들만/ 찬 서리에 반짝이는/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보았느냐/ 달빛 아래 산들은/ 빚진 아버지처럼/ 까맣게 앉아 있고/ 저 멀리 강물이 반짝인다/ 까만 산 속/ 집들은 보이지 않고/ 담뱃불처럼/ 불빛만 깜박인다/ 하나둘 꺼져 가면/ 이 세상엔 달빛뿐인/ 가을밤에/ 모든 걸 다 잃어버린/ 들판이/ 들판 가득 흐느껴/ 달빛으로 제 가슴을 적시는/ 우리 나라 서러운 가을 들판을/ 너는 보았느냐”(김용택/가을밤)

 

 

  답답한 사무실과 교실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밖에 나가 바람을 쐬는 것도 썩 내켜 하지 않는 것이 요즘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섬진강 시인 김용택 님이 가을들판을 보았느냐며 우리에게 묻지만, 우리의 답은 신통치 못합니다. 가을밤에 달빛을 밟으며 마을 밖으로 걸어 나가 본지 오래 되었고, 적막한 들판에 아득히 서 본지도 오래 되었고, 우리는 가을밤도 달빛도 강물도 다 잃어버린 지 오래 되었기에.... 하긴 휴대폰에 달린 작은 창 하나로 세상과 소통하는 시대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러다간 정말 중요한 것들은 다 잃어버리고,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목숨을 바치며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사색적이기 보다 청승맞게 보일지라도 잠시 하던 일이나 수업을 멈추고 오솔길을 거닐거나 낙엽을 주워보고 때론 가을시 읊어가며 나에게 보내는 가을 편지 써보는 것은 어떨른지요? 비록 천방지축인 아이들이라고 해도 허리를 숙이고 낙엽을 줍는 그 순간, 손끝으로 전해져 오는 무언가 순결한 이끌림 같은 것이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 행복에 대한 감수성을 키워 주다보면 우리도 자연스레 행복해질 것만 같구요.

 

 

  용혜원 시인이 '가을을 느끼려면 가슴에 젖어드는 가을바람 속을 걸어 들어가라'고 했듯이 가을 숲을 걸으며, 풀이 말라 가는 냄새와 달콤한 향기를 풍기는 들꽃들, 창문에 고요히 흘러 넘치는 달빛과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섬돌 밑에서 밤을 세워가며 안타까이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구슬픈 울음소리 등으로 가을을 애달파하며 맞이하고 싶습니다. 산들바람이 문풍지를 울릴 때마다 세상에 나누어 줄 것이 많다는 듯이 한 잎 두 잎 자꾸만 떨어지는 낙엽처럼 우리도 가을 엽서 되어 누군가에게 무엇을 나눠주고도 싶습니다. 햇살 비추인 억새가 고운 빛을 내듯, 가끔은 흐르는 강변을 바라보며 서로의 가슴속에 진하게 밀려오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눌 때면 우리의 사랑도 탐스럽게 익어 가는 열매가 될 것입니다. 이렇듯 가을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기에 안성맞춤인 계절입니다. 단 몇 분 몇 초라도 푸르러 가는 끝없는 하늘과 눈을 맞추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가을을 통해 더 사랑하고, 나누고, 봉사하는 새로운 꿈을 꾸고, 가을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답게 물들어가듯 우리의 일상도 농익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바로 거기에 하나님의 숨결과 음성이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7년 11월 12일 교직원예배: 윤삼열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