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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묵자흑의 원리

물음표와 느낌표 2007. 10. 8. 09:06

近墨者黑(근묵자흑)의 원리 (시편73:28) 364장

 

 

  [법구비유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다가 헌 종이조각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저 종이는 무엇을 하던 종이냐?" 제자는 종이를 살펴본 후 "이 종이는 아마 향을 쌌던 것으로 보입니다. 향긋한 향내가 납니다." 얼마쯤 더 걸어가다 보니 이번엔 새끼줄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부처님이 또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네, 이것은 아마 생선을 묶었던 새끼줄인가 봅니다. 비린내가 몹시 납니다." 이런 대답에 부처님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것은 본래 정결한 것이었으나 인연에 따라서 죄를 짓기도 하고 복을 짓기도 한다. 현명한 사람을 가까이 하면 덕이 높아지고, 어리석고 우매한 자를 벗하면 근심과 죄가 늘어난다. 마치 저 종이나 새끼줄처럼 향을 가까이 하면 향내음이 배어나고, 생선을 가까이 하면 생선 비린내가 나는 것과 같아 차츰차츰 물들어가면서도 자신은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한다면 먹을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게 검어진다는 '근묵자흑(近墨者黑)'이란 고사성어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무엇을 가까이 하느냐에 따라 사람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접근의 원리'이기도 합니다.   

   인도네시아나 브라질에 가면 생명력이 충만한 열대 우림이 있습니다. 그곳의 나무는 10m ~ 20m는 보통입니다. 반면에 북극이나 남극에는 만년설과 얼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주받았기 때문이 아니라 태양과의 거리 때문입니다. 태양으로부터 거리가 멀면 얼음이고, 거리가 가까우면 열대 우림이 됩니다. 이처럼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가 곧 관계의 정도를 나타낸다고 하며 거리에 따라 4가지의 거리로 나누었습니다. 먼저 '밀접 거리'인데 0에서 45cm 거리로서 부부나 연인 같은 친밀한 사람들 간의 거리입니다. 두 번째는 '개체 거리'로 45에서 120cm 정도의 거리인데 손을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로 친구끼리의 거리입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거리'로 120에서 360cm 정도 거리인데 이는 업무적 형식적 의례적인 교제의 거리입니다. 그리고 '공적인 거리'가 있는데 360cm 이상으로 강의나 프리젠테이션 때 화자와 청중 사이의 거리로서 서로 관계없이 지나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그런데 거리의 법칙은 여기에 머무르지 않고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과의 거리에 따라 신앙의 정도와 깊이가 달라지는데, 하나님과의 거리가 멀어지면 예배를 등한시하게 되고, 가까우면 우리의 모든 삶의 문제들이 봄철 눈 녹듯 다 녹아 내리고 삶은 축복의 자리가 되어집니다.  

 

  사람들은 멀리 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 망원경, 작은 것을 더 자세히 보기 위해서는 현미경 같은 기계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더 잘 보기 위해 기술과 능력을 키우려고 하고 또 그러한 사람들이 성공하거나 앞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능력이 없더라도 잘 볼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것은 상식적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없고, 기구가 없다고 하더라도 우선 가까이 가면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잘 아는 방법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고, 그것이 곧 복(시73:28)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우리를 가까이 하시기 때문입니다.(약4:8) 가까이 가면 크게 보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면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문제에 가까이 가면 문제가 크게 보입니다. 만날 때마다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문제와 가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가까이 있는 사람은 문제의 산을 보기 보다 산을 움직이는 믿음을 봅니다. 이것은 능력이나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거리의 문제입니다. 능력이나 환경은 아무나 바꿀 수 없지만, 가까이 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무엇보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야하고, 우리 아이들과도 가까워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곳에 축복의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학교는 기독교학교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방법도 기독교적이어야 합니다. 이 말은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과 '밀접 거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 오늘도 우리는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전공과 사명에 가까이 하면 우리 모두는 꿈을 꾸고, 꿈을 이루며, 꿈을 나누는 아름다운 축복의 사람들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목포정명여자중학교 2007년 10월 8일 교직원예배 : 윤삼열목사)